요즘 비로소 가을이 되었음을 느낀다. 지난주 가을 바다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영동고속도로의 길을 좋아한다. 고속도로임에도 불구하고 길이 주는 아늑함과 깊은 산의 그윽함은 운전하는 맛?을 느끼게 하여 주기 때문이다. 온 산이 붉었다. 감나무에는 감이 햇살을 받아 이쁘게도 달려있었으나, 나무는 그 무게를 지탱하기 힘든지 가지를 늘어 트려 놓고 있었다. 매일 공원을 산책하며 우리 아기들은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덩달아 무언가에 압박되어 있던 나의 마음까지 한결 가벼워졌다.(마음껏 산책을 시키지 못했던 그 시간들을 아기들에게 보상? 한 듯한 느낌이랄까?) 길에 떨어진 잎사귀들을 밟을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났다. 경쾌한 듯하면서도 왠지 모를 쾌감?을 느낄 만큼 그 소리는 가볍게 느껴졌다. 가을의 아련한 잔재를 밟으며 행복을 느끼다니 나도 이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그 속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정원벤치/제임스 티소/99.2x142.3cm/oil on canvas/1882년경/개인소장>
어느 가을 언니와 함께 길을 걷던 중 "언니, 나는 돈이 없어도 좋아 그냥 이렇게 가을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은행잎의 노란색에 빠져 내 마음이 늘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어"라고 말하자 늘 이성적인 나의 언니가 하는 말은 "야! 이 노란 은행잎이 너에겐 낭만이겠지만 이걸 치우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에겐 노동이자 힘듦이야. 너는 늘 낭만으로만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어. 당장 아이의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누군가는 이것을 치우며 무슨 생각을 하겠니?"라며 나의 감성을 다 깨 버린 언니의 한마디. 그렇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양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만의 감정에 몰입해 있었지만 언니는 낭만 뒤에 있을 현실을 보고 있었다. 한 뱃속에서 태어났는데 우리는 참으로 다르다. 어쩌면 상상할 수 없을 가난 속에서 첫째라는 책임감이 언니의 감성을 막아 놨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의 언니는 나이에 맞지 않는 지적인 외모에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운동도 잘하며, 학교 다닐 적 성적은 늘 전교 1등을 도맡아 할 정도로 우리 동네의 자랑이었으니. 그래서인지 나는 언니와 어린 시절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늘 덤벙대고 혼자 지내길 좋아했지만, 언니는 꼼꼼하면서 사탕이 한 알 생기면 그것을 먹지 않고 동생들과 나눠먹기 위해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그 한 알의 사탕을 이로 깨서는 동생들을 나눠주던 나의 언니. 괜한 심술로 한 이불을 덮고 잘 때면 발로 차며 싸우던 그때가 지금도 그립다. (나의 일방적인 시비를 언니는 늘 받아 주었었다.) 지금도 언니는 늘 글을 분석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자신의 삶을 너무도 열심히 살아간다. 나는 언니를 바라보며 언제쯤이면 그녀처럼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 나의 언니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한다. 나의 친구이자 영원한 동반자인 언니에게 오늘의 이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 언니가 이 그림을 실제 볼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자화상/제임스 티소/oil on canvas>
제임스 티소(James Tissot1836-1902)로 알려진 그의 본명은 James Jacques Joseph Tissot이다. 프랑스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티소의 어머니는 모자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였다. 티소는 17살부터 그림을 자신의 평생 직업으로 선택하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그러한 티소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었다. 티소의 그림에 나타나는 섬세하고 화려한 여인의 옷 장식과 드레스의 디테일들은 티소가 의류업에 종사하였던 부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티소는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였으며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제자였다. (앵그르는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임-언젠가 앵그르에 대한 그림을 소개하겠다.) 티소는 분명 프랑스와 영국의 상류층 사교계 여인들을 세심하고 아름답게 묘사하여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화가임에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술비평가들은 그가 아무런 의미 없는 졸부를 위한 그림을 그린다며 비평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비평에 개의치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붓터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과감 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티소는 상류층의 여인들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정치적인 출세를 위해 나이 많은 남자의 정부로 살아가는 여인의 그림(정치부인/1883-1885)그리고 당시 근친결혼으로 인해 병을 얻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귀족 남자들의 초상화 등 많은 작품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였다. 티소는 파리 코뮌 사태에 휩싸여 영국으로 망명 후 자신의 이름을 제임스 티소로 바꾸었다.
<10월/제임스 티소/53.5 x 116.8cm/oil on canvas/1878>
티소의 대표적인 그림인 <10월>이다. 검은 드레스의 치맛자락을 살짝 들추고 여인의 지금 오른팔에는 책을 낀 채 더 깊은 숲을 향하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그저 아름답다라는 표현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머리의 모자부터 발끝의 검은 구두까지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그녀는 지금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살며시 돌아보고 있다. 그녀의 눈길은 지금 누군가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 누가 그녀를 불렀을까? 사그락 사그락 낙엽을 밟고 있는 그녀의 검은 구두 조차도 여인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전달되어 치맛자락을 밟을 듯 말듯하여 넘어질 것만 같은 아슬한 아름다움이 넘쳐흐르고 있다. 노란 참나무 잎(잎사귀를 보아 참나무로 추정됨)과 검은색의 드레스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깊은 가을 속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그지없다. 화려한 드레스와 완숙한 여성미를 뽐내고 있는 여성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 가을을 만끽하고픈 듯 '나를 부르지 마세요. 나는 지금 혼자이고 싶답니다. 가을이 지금 나를 부르고 있어요." 그러나 화가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 "나는 잠시라도 당신과 떨어져 있을 수 없소. 이리와요 내 사랑" 티소가 부르고 있는 이 여인의 이름은 캐슬린 뉴턴(1854-1882)이다. 제임스 티소가 평생을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비운의 짧은 생을 마감한 여인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티소는 프랑스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던 화가이다. 티소가 캐슬린을 만난 것도 바로 이 시기(1872년) 런던에서였다. 당시 캐슬린은 사생아를 둘이나 낳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러나 티소는 그러한 여인의 아픔까지 끌어안으며 그녀와 아이들을 모두 사랑하였다. 티소와 캐슬린이 함께 생활하던 중 캐슬린은 또 다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하였으나 티소는 끝내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티소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자란 아이들과 캐슬린의 모습은 그림 <정원벤치1882>에서도 나타난다. 이 그림은 캐슬린이 당시 암과 같았던 폐결핵에 걸려 스스로 자살을 한 후, 티소가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은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죽는 순간에도 이 그림이 티소의 곁에 있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을 정도로 티소는 캐슬린을 사랑하였다. 아버지가 각기 다른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아이들의 표정과 캐슬린의 따듯한 눈빛 그리고 화가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사랑이 흐르고 흘러 사랑의 강물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6년에 걸친 그들의 사랑은 캐슬린의 죽음으로 짧게 끝났으나 남아 있던 티소에게는 화가로써 새로운 길을 열어준 평생의 사랑이었다. 티소는 캐슬린이 사망 후 팔레스타인 등지를 순례하며 종교에 심취하게 된다. 이후 티소는 사망하는 날까지 거의 종교화에 제작에 매진하였다.
<봄/제임스 티소/61 x 87.5 cm/oil on canvas/1878>
<여름/제임스 티소/92.08 x 51.44cm/oil on canvas/1878/개인소장>
누군가에겐 가을의 낙엽은 사소한 심리적 안정감을 안겨주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고된 노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가을의 낙엽은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자연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고, 한낯 치워야 하는 귀찮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글을 쓰며 느끼게 되었다. 숲에 있는 낙엽은 산을 키워나갈 자양분이 되겠지만, 도시의 거리에 자리한 낙엽은 귀찮은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내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정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어디에로도 움직일 수 없이 고정된 곳에 존재하여야 한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일까? 나는 내가 자란 곳에서 떠나 그 환경을 딛고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의 나로 존재하여 사회라는 숲의 자양분이 되리라 다짐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예전처럼 조금 더 사회적 참여를 키워나갈 생각이다. 나의 아픔이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그림 <10월>을 보며 티소의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눈길과 그의 영원한 사랑과 나의 존재에 대해 돌아볼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티소의 그림은 다른 인상파의 그림과 달리 훨씬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내가 티소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의 언니가 이 글을 만약 본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언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티소가 평생을 사랑했던 캐슬린과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