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파탈인가? 여전사인가?

카라바조의 유티트에 대하여.

by Celine

확실히 나는 요즘 매우 편협한 인간이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몇 해 전 한 신문사에 나의 미술 칼럼을 1년 정도 게재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독자들을 우선으로 그림을 선별하였었다. 계절 그리고 그날의 날씨 또는 사회화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그림을 찾고 또 찾아 그림과 인간의 심리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림을 선별할 때 나의 감정을 이입시키거나,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그림 또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글을 쓰던 문체와 달리 지금 매우 사무적이고도 사회적인? 문체로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은 나의 감성이 점점 메말라가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나는 환경이란 것이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한 주를 시작하는 이 아침 나는 나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




카라바조 이전에도 미술은 있었고,
카라바조 이후에도 미술은 있었다.
그러나 카라바조 때문에
이 둘은 절대 같은 것이 될 수 없었다.
<나르시즘/카라바조/110x92cm/oil on cavas/1599/: National Gallery of Ancient Art, Rome, Italy>


회화의 장르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여성'을 주제로 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여성을 아름다운 산물? 로서 남성적 시각으로 표현하였으며, 현재는 자유로운 하나의 독립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의 저항으로부터 현재 여성은 독립된 완전한 인격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왜 여성은 남성의 시각으로만 보아야 하는가? 그동안 여성은 여성 자신의 시선으로 객관성을 가지고 자신을 직접 표현하지 않았는가? 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많은 페미니즘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정의된 지 불과 몇십 년이 되지 않았다. 여기 시대의 이단아이자 시대의 도덕적 파괴를 꿈꾸었던 거장이 있다. 그는 바로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1-1610)이탈리아 화가이다. 그는 매우 거친 인생을 아주 짧은 시간 속에서 경험하고 우리의 곁을 떠난 화가이다. 카라바조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로크 미술의 대가이며 침잠하고 그의 정신적 병약함이 나타나 있는 그림을 주로 그렸으며, 아주 짧은 생을 살았던 화가이다. 젊은 시절 카라바조는 도둑질을 하기도 하고, 매일 싸움을 하였으며, 살인을 하기도 하였던 화가이다. 그랬던 그는 말라리아로 인해 39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한 그가 지금 우리에게 거장이라는 수식어로 남아 있는 이유는 철저한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바로크 미술이라는 시대를 창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집중적인 조명 효과는 새로운 정신 표현의 수단으로써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미술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명암의 극명함을 이용하여 아주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있다. 이에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그 명암을 이용하여 하나의 극 작품을 보듯 매우 드라마틱하는 것이다.




<유디트/카라바조/ 195 x 145 cm/oil on canvas/1598 - 1599/National Gallery of Ancient Art Rome, Ital>


위의 그림의 실제 제목은 <Judith Beheading Holofernes>이다. 즉 주디스의 참수라고 표현하면 될 듯싶다. 지금 여인은 남성의 목을 자르고 있다. 그녀의 미간은 찌 부려져 있으며, 손에는 남성을 헤치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듯 칼자루를 꼭 쥐고 있다. 또한 그녀의 옆에 있는 늙은 하녀의 표정에서는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잔인함 속에서 아주 침착하며 담담함과 어서 그의 목을 자르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녀의 손은 여인이 쥐고 있는 칼자루에 들어가 있는 힘보다 더욱 강렬히 두 주먹을 꼭 쥐고 있다. 죽어가는 남성의 비극적인 표현은 아주 아이러니하다. 갑작스러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경계를 할 틈도 없이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음에 덧없는 표정이다. 목이 잘려 나가는 순간을 맞이한 남성의 피는 거칠게 사방으로 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급박한 시간인지 알 수 있는 표현이다. 죽어가는 남성은 근육질의 남성이지만 저 연약한 여인의 손에 죽어가며 조금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자주 나오는 유디트의 이야기이다. 유디트는 자신의 도시가 아시리아 군대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자 적진에 몰래 잠입하여 적장을 유혹한 후 그가 잠든 사이 적장의 목을 잘라 자신의 나라를 구한 여전사이다. 그림 속 여인의 몸을 보라! 저 연약한 여인의 몸에서 저러한 강력하고도 잔인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여인은 나라를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결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고야 말았다. 배경으로 보이는 붉은 벨벳의 커튼은 매우 암울하며 어두운 색조를 띠고 있다. 그리고 빛은 여인이 행하고 있는 행위를 향해 비치고 있다. 그녀의 얼굴 그리고 죽어가는 남자의 얼굴보다는 죽어가는 남성의 근육질의 팔, 죽어가는 몸부림과 여인이 쥐고 있는 칼자루의 손보다는 그녀의 팔과 몸에 빛을 비추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중심이 아닌 그 행위 즉 그녀가 살인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속담이 우리에게 있다. 오늘 아침 이 한 점의 그림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여성이기에 또는 너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책임져야 해! 또는 나는 여성이니까 그런 일은 하기 힘들 거야. 라며 자위하거나 스스로를 단정짓는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도 사회의 일원이며 그 인격을 갖추고 있는 하나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여성 자신이 1900년대 초기의 신여성들처럼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존재성을 스스로 인정하길 바란다. 당당하고 아주 멋지게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그 누구에게도 밟히지 않는 그런 하나의 인격체로써 자신을 더욱 사랑하길 바란다. 저 연약한 여인은 나라를 위해 거사?를 치를 수 있는 무의식적인 힘을 발휘하지 않았는가? 여성의 잠재의식과 무의식 속에는 아직 표현되지 못한 자아가 너무도 많다.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여! 그대들은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찾아 당당하게 사회와 맞서는 존재가 되길 이 아침 나는 바래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ugGXVp_9wy0 이사오 사시키 Sky 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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