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쪽으로 향합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 이쾌대를 다시 보다.

by Celine

합정역 5번 출구~~~ 합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왜 우리는 갈라서야 하나~~ 유산슬(유재석)의 노래를 들으며 한바탕 웃어 보았다. 돌아보니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한 민족이면서도 다른 땅을 선택하여 갈라져 살고 있는 민족! 통일이란 전쟁을 겪었던 시대들은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겠지만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아주 이성적 이유를 주장하며 그것에 대해 반대하기도 한다.

<천지창조/미켈란젤로/프레스코화/1511-1512/시스티나성당 바티칸 로마>

내가 어릴 적 사진에서만 보았던 나의 할아버지는 중절모에 긴 코트를 걸치고 가죽장갑을 낀 손에 담배가 들려 있었다. 그의 모습은 흡사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당시 모든 남성들의 로망?이었던 모던보이의 전형적 모습이었다.(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변요한보다 남성적이고 멋지셨다.) 잘 생긴 외모와 시대에 맞지 않게 매우 큰 키는 신 문물의 냄새가 풀풀 풍기며 그의 스타일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나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단 하나도 없다. 그저 낡은 흑백사진 속의 모습이 전부이다. 그는 일본에서 기계와 전기기술을 배워와 조선에서 전기기술에 관련된 고위 고급 인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북으로 발령이 나게 된 후 6.25라는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대대로 명문가였던 집안의 귀한 도련님으로 살았던 나의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되어 버렸다. 그 후 나의 할머니는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는 우리 집안의 전설이 있다. 나의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을까? 전쟁 중 남한으로 내려오시다 폭탄이 터져 돌아가시는 모습을 누군가 목격을 했다는 증언 외엔 그의 행방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맞이하게 된 전쟁은 아무 잘못 없는 한 가정의 삶이 순식간에 조각나기도 하고, 크게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가 되어 버렸다.


당시 프롤레타리아와 아나키즘의 영향으로 북쪽을 선택했던 지식인들은 한둘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쾌대!


그의 그림에서는 그 만의 색채와 감각이라기보다는 서양미술의 조합된 모습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당시 사회상 급변하고 정체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개인의 색을 갖는다는 것의 어려움?은 이해가 되는 바이다. 그러나 그는 당시로써 매우 파격적 구도와 거대한 그림의 크기, 입체적 조형성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림을 그렸었다.

<외젠 들라쿠르아의 그림들>



이쾌대(1913-1965)는 경상북도 출신이다.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워 조선에서는 그동안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며 주목하게 된 화가이다. 그의 그림에는 강한 힘과 군중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켈란젤로의 근육질을 갖고 있는 남성적 표현 즉 입체적 조형미와 외젠 들라쿠르아의 그림에서 보이는 군중들의 봉기 그리고 프랑스 혁명을 맞아 자신들의 정체성과 권리를 찾기 위한 뜨거운 몸부림을 향한 전체적인 구도가 매우 흡사하다.

또한 여인의 풀어헤친 가슴은 그동안 봉인되어야만 했던 여성성을 과감히 파괴하였다. 여인들의 신체도 남성과 동일하게 근육질의 탄탄하고도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보인다.



위의 그림에서 보이듯 당시 인간이 얼마나 참혹한 현실을 맞이하였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쉽게 느껴질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고 죽어가는 여인을 부축하고 있는 남성과 각 인물들의 표정은 그저 내가 살 수만 있다면 타인의 생명쯤이야 나와는 상관없어라는 듯 보인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려는 모습 등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림의 제목과 같은 군중의 심리가 돋보이고 있다.



그가 그린 자화상에는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화가가 정면을 응시하며 매우 크게 부각되어 있다. 이는 스스로가 자신의 직업은 화가라는 그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뒤로 보이는 조선의 푸른 하늘과 나무가 베어나가 버린 산 그리고 여인들은 매우 단순하게 표현하였다. 그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더욱 부각해 화가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팔레트와 붓을 들고 있는 자신의 팔 모습조차도 매우 강인한 근육질의 몸 표현이 보인다. 그는 서양의 그림과 다른 동양적 그림을 추구하여 색채는 향토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조형적 신체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또한 그는 자신의 부인을 매우 사랑하였었다. 그래서인지 덕수궁현대미술관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부인 그림이 아직 남아있다.


이쾌대는 1941년 이중섭 등과 함께 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였었으며 1950년 6·25 전쟁 직후, 서울에 급조되었던 남침 북한 체제의 남조선미술동맹에 적극 가담하였던 끝에 인민 의용군으로 참전하다가 포로가 되어 거제 수용소에서 휴전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남북 포로 교환 때 자의로 북한을 택하여 넘어갔다. (그의 형이 북한에 남아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한 때는 월북작가라는 명칭 때문에 우리의 미술사에서 이름 조자 거론할 수 없었다. 이후 해금 작가로서 한국의 근현대미술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화가가 되었다.



그림을 관람시 도슨트의 설명이 나의 귀에 들렸다. "당시에는 정식 화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아류 화가 즉 재야 화가들이 존재하셨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화가가 바로 이쾌대입니다." 당시 신미술가협회를 주도했던 아류화가라?바로 지적질을 하고 싶었으나 나는 그 자리를 그냥 피하고 말았다. 전달하고 있는 그녀를 대중 앞에서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알고있는 지식이 있다하여 설레발?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전달자의 한마디, 글의 한 문장을 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youtu.be/v0tWgFXGB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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