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과 비밀이 없이 지낸다. 나의 딸은 또래의 아이들 처럼 클럽에서 젊음을 불사르기 보다는 오히려 책을 읽고 카페에 앉아 노닥이며 차마시기를 더 선호한다.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면 자신의 나이에 맞지않게 오아시스의 노래를 좋아한다. 지금은 토론토에 있으나 벤쿠버에 있을 당시 봄에 전화가 왔다."엄마 한국에서 오아시스공연이 있어. 나 지금 눈물날 것 같아. 캐나다는 그들이 테러때문에 공연하지 않는다고 말했거든. 나 대신 좀 다녀오면 안돼?" 아구 귀여워라. 아무리 대리만족이라지만 공연을 대신보고 오라니ㅜㅜ.
런던에서 이쁜 딸. 참 어렸다 심술쟁이 조카와 함께.
오늘따라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텅빈 느낌이다. 오랜만에 딸의 방청소를 하며 그녀가 두고 간 책들을 보며 딸에 대한 그리운 슬픔이 밀려왔다. 집에 있었다면 나의 손을 붙들고 조잘댔을 딸! 그리고 한 없이 나를 귀찮게 했을 딸!
벤쿠버에서 생활할 당시 늘 착한 딸
한 때 한국의 학교에 적응을 못해 자퇴라는 말이 입에 붙어있던 딸. 딸의 점심시간에 전화벨이 울리면 괜히 심장이 철컹했던 날들이 있었다. 딸은 한글을 5살 나이에 혼자 깨우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Bed story time을 내가 어길시에는 끝까지 잠들지 않을 때도 있었고, 너무도 조용해 그녀의 방문을 살며시 열면 침대 한귀퉁이에 커다란 박스를 가져다 두고 그 속에서 책을 읽고 있곤 했다. 초1때 비가 오는 어느 날 외투를 입고 오지 않아 물어봤더니 "응 저기 교실 앞에 차가 비를 맞고 있어서 내가 불쌍해서 차를 덮어주고 왔어" 또는 책가방이 없이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엄마 집에 오는 길에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저기다가 버리고 왔어"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의 딸
어려서 부터 나를 늘 긴장하게 만들던 딸은 우리나라 최고의 영재들만 갈 수 있다는 그 우유회사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친구들에게 인정 받는 아이였다. 그랬던 딸이 어느 날 변했다. 성적은 거꾸러지고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부터 누구도 만나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당시의 나는 내 아이가 왜 변했는지그 원인을 찾기위해 노력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었다. 지금의 딸은 키가170cm가 넘는 개성적인 예술학도가 되었다. 간만에 딸의 책상을 정리하며 딸의 흔적을 이제야 치우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힘들었던 시간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 엄마인 내가 너무도 미웠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과 꿈 그리고 행복을 찾기 위해 몇년을 돌고 돌았을까? 딸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엄마는 딸이 자신의 멋진 길을 분명히 찾을 것이라 믿고 또 믿었단다.
딸이 좋아하던 책들을 모아 보았다. 이것은 아주 일부이다. 우리집은 책더미 속에 깔려살 정도로 책이 널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