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데코의 여왕

꿈이라는 질문을 던진 타마라 드 렘피카

by Celine

중학교 시절의 나는 결코 부드러운 아이가 아니었다. 언제나 날카롭게 나를 방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나에게 쉽게 말을 거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사춘기의 감정들을 혼자 감당하기엔 마음이 아직 미숙했던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부모님께서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동네에 단 하나뿐이던 여성용 자전거를 사주셨다. 흰색 안장과 파란색 핸들, 그리고 따르릉 소리를 내던 경쾌한 경고벨이 달린 자전거였다. 나는 그 자전거를 타고 매일 30분 거리의 학교를 오갔다. 무려 3년 동안.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찬 공기를 가르며 페달을 밟던 그 시간은, 손끝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마냥 신났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더 즐겁고 자유로웠던 그 순간들—왜그리 행복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중학교 3학년 무렵, 담임 선생님께서 어느 날 조용히 앉아 있는 내게 다가오시더니 느닥없이 물으셨다.“너는 꿈이 뭐니?”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여군이나 종군기자가 되고 싶어요.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고등학교 2학년 가을밤,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 잘 지내니? 나 김 선생이야.” 중학교 시절 나의 꿈을 물었던 바로 그 그 선생님이었다. “어제 길에서 우연히 너를 봤어. 뒷모습이 참 힘들어 보이더구나. 무슨 일 있니?” 공중전화 수화기 너머로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너, 그때 여군이나 종군기자가 꿈이라고 했지? 그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마. 세상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길이 따로 있는지도 모르지.”


<장갑을 낀 소녀/타마라 드 렘피카/oil on canvas>

그 전화를 끊고도 오랫동안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진심으로 물어준 첫 번째 어른이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기억해주었던 유일한 분이기도 했다.


나는 왜 여군이나 종군기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지금의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고등학교 시절은 더없이 고요하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 부모님께 짐이 되기 싫어, 나 자신에 대해 함부로 털어놓지 못한 시절. 내적 갈등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선생님께서 왜 갑자기 전화를 하셨는지, 왜 그 시절 내게 꿈을 물으셨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말수가 적고 조용했지만, 때론 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던 내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끼셨던 건 아닐까. 정의로운 기질, 그리고 세상에 맞서는 태도. 그게 선생님의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꿈은 꼭 있어야 하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그 물음은 더 자주 떠오른다. 꿈은 점점 작아지고, 현실은 점점 무거워진다. 경제적 여건, 나이, 사회적 조건.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세상이 우리에게 그리 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발코니에 있는 키제트/타마라 드 렘피카/oil on canvas/1927. 키제트는 렘피카의 딸이다. 보르도 국제미술전 1등 수상작 >

그런 내게,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1898–1980)의 그림은 오래도록 머무는 질문을 건넨다. 그녀는 20세기 초,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다. 아르데코란 제1차 세계대전 직전 프랑스에서 시작된 시각 예술 양식으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인 장식미, 금속성과 도시적인 감성이 특징이다.


<폴란드 키엘체에 있는 럼피카의 흉상>

렘피카는 폴란드 태생으로, 큐비즘의 마지막 단계라 불리는 ‘종합적 큐비즘’과 ‘부드러운 큐비즘’을 자신의 방식으로 수용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녀는 단순한 여성 화가가 아니었다. 신여성의 대명사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한 시대의 전위에 섰던 존재였다.


그녀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도전과 해체가 담겨 있다. 성(性)에 대한 주제를 대담하고 관능적으로 다루며, 귀족 여성들과 사교계 인물들을 세련되면서도 퇴폐적으로 묘사했다. 그것은 단지 미학적 실험이 아닌, 시대를 향한 풍자이자 비판이었다.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타마라 드 렘피카/oil on canvas/1929>

대표작 중 하나인 1929년작 《자동 초상화(Auto-Portrait)》는 잡지 *디에 담므(Die Dame)*의 표지로 그려졌다.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진 이 작품은, 렘피카가 신여성으로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부의 상징인 부가티 자동차에 앉아, 운전대에 손을 얹고 무심한 표정으로 세상을 응시한다. 마치 헬멧과 운전복을 갑옷 삼아, 남성 중심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전사처럼 말이다.


그림 속 그녀의 모습은 냉철하다. 차가운 금속처럼 얼어붙은 표면, 강인하고 관능적인 얼굴. 나른하게 내려앉은 눈꺼풀과 붉게 그려진 입술은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힘을 상징한다. 렘피카는 여성의 손을 남성처럼 크고 우람하게 그렸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는 느낌이다. 그는 남성성을 강조하였으나 렘피카의 그림은 여성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독립적인 주체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그녀의 신념이 그림 속에 녹아 있다. 또한 그녀의 인물들은 대리석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운 피부를 지녔다. 생동감보다는 조각상처럼 고요하고 무표정한 얼굴들. 그것은 어쩌면, 시대의 압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봉인한 여성들의 자화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렘피카는 절제된 색감을 통해 극적인 긴장을 만들어냈다. 색은 절제되었지만, 그녀의 그림은 언제나 화려하고 관능적이었다. 절제 속의 욕망, 차가움 속의 뜨거움. 이중성과 역설은 그녀의 미학이자 전략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돈나, 칼 라거펠트, 마크 제이콥스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렘피카는 원래 귀족의 아내였지만, 전쟁과 이주, 생계의 위기 속에서 다시 붓을 들었고, 그 붓끝으로 한 시대를 기록했다.


<타데우즈 드 렘피카의 초상/타마라 드 렘피카/oil on canvas/1928 렘피카의 전 남편>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의 꿈과는 다소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렘피카처럼 온몸을 무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행히 그녀가 살던 시대와 현재의 여성은 그 위치에서 많은 진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성의 힘이 작동하는 구조는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로부터 나를 지킬 줄 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만약 지금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없음(nothing)’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저 나의 감자와 함께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그림을 연구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나의 오늘이며,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에게 꿈은 있나요? 있다면, 그 꿈은 무엇이며, 왜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2025.6.27.흐린 하늘과 달리 간만에 맘이 편하다.

감자는 어디서 무얼하는지 보이질 않는다. 감자야~~ 우리 사랑타임이야. 이리와~~♡


https://youtu.be/IozDsECl8Yg?si=2LJJjmkVtYZ-NtH9

영화 맘마미아 ost중 I have a dream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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