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아트를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태국은 전 세계 광고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닌 나라다. 기업이나 정부의 간섭 없이 창작자가 오롯이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구조 덕분이다. 때문에 태국 광고는 형식과 분량을 넘어서 강한 감정과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며, 때론 영화보다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너를 정리하는 법> 역시 그런 정서의 연장선에 있다.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심히 틀어놓고 보는 힐링 영화가 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행위를 넘어, 과거와 감정의 잔해를 덜어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추억이 묻은 물건들과 이별할 때 느껴지는 감정은 아쉬움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이다. 그렇게 비워진 공간은 ‘나’라는 존재를 마주할 수 있는 여백이 된다.
이런 감각은 자연스럽게 미니멀 아트(Minimal Art)로 이어진다. 195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한 미니멀 아트는, 감성과 주관이 강하게 드러났던 추상표현주의에 반하여 감정과 해석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채 극도로 절제된 형식과 반복, 구조만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캔버스 위의 감정 대신, 물질 자체의 존재성과 공간 속 배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미니멀 아트의 대표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는 “작품은 그것이 놓인 공간도 함께 작품이다”이라 말했다. 실제로 그의 조각들은 대좌 없이 공간에 직접 놓이거나 벽에 설치되며, 관람자의 시점과 동선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을 유도한다. 작품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 나아가 관람자의 경험 자체가 예술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저드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다. 초록색 플라스틱 구조물이 규칙적으로 나열된 벽 앞에서, 미술을 공부하기 전의 나는 그저 "이것도 예술일까”라고 지나쳤다. 그러나 미술사를 공부한 뒤 다시 마주한 그의 작품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보이는 것 이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느끼게 된다’는 오래된 진리를 실감하게 된다. 미니멀 아트는 감상자에게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태도와도 깊게 닮아 있다. 과도한 해석이나 감정의 과잉을 덜어내고,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미니멀 아트가 지닌 철학적 울림이다.
몇 해 전 생활공간을 옮기며 수많은 물건을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나를 괴롭히던 감정의 잔해까지 함께 정리할 수 있었다. 이후, 새로운 물건이 들어올 땐 반드시 하나를 비워낸다. 그렇게 내 삶은 점차 가볍고 명료해졌다. 마치 잘 정돈된 호텔의 풍경처럼, 불필요한 것이 없는 공간은 그 자체로 쉼이 된다.
미니멀 아트는 화려한 감정과 장식을 걷어낸 자리에 사물의 본질을 남긴다. 그 미학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복잡하고 과도한 사회 구조 속에서 종종 길을 잃는 우리에게 미니멀 아트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이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는가?" 덜어냄은 잃음이 아니라, 발견이며 비움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만난다고 말이다.
https://youtu.be/MaaCivbKr_4?si=7SiXnQ4ktHP6kJi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