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것의 의미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Evgrafovich Tatlin).

by Celine

나는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자주 ‘좋아하는’이라는 말을 붙인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하늘, 좋아하는 장소. 그 말은 생각보다 자주, 아주 자연스럽게 내 말끝에 머문다. 어느 날, 지인이 말했다. “Celine은 참 좋아하는 게 많아요.” 처음엔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 말의 의도를 알지 못해 한 박자 늦게 되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늘 말할 때 보면 그래요. ‘좋아하는 그림’,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사람’처럼. 알고 있었어요?”

나는 몰랐다. 내가 어떤 말투를 쓰는지도. 무언가를 구분 짓고, 감정을 분명히 표현하는 일이 내겐 너무 당연한 습관이었기에, 그런 말의 자취조차 의식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좋아한다’는 감정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내 안의 언어였다.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건, 삶을 지탱해 줄 자원이 많다는 뜻 아닐까. 나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가능한 한 밝은 쪽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다.


모스크바 미술대학교수로 활동했던 노년의 타틀린.

그런 내가 유독 마음을 빼앗긴 예술가가 있다. 바로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체제가 변화함에도 자신의 땅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예술가이다. 시인이었던 어머니와 미국인 철도 기술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조각가,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의 이름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술사의 결정적인 변곡점을 만든 인물이기에 미술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타틀린은 조각을 '공간'으로 다시 생각한 사람이었다. 전통 조각이 받침대 위에 놓이거나 이동 가능한 형태였다면, 그는 조각이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15년, ‘러시아의 마지막 입체 미래주의 전시 0.10’에서 그는 <코너 카운터 릴리프>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철판과 나무 조각, 노끈 같은 이질적인 재료를 결합한 이 작품은, 벽과 천장에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것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공간에 말을 거는 예술이었다. (특히 나무 등에는 대패질과 같은 가공을 가한 물질이 아닌 고유의 순수성을 담고자 조각에 향기?를 갖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나무 특유의 향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의 작품 전체는 아니나 그러고자 노력했다.) 같은 전시에서,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으로 절대주의를 선언한다. 말레비치가 모든 물질성과 감정을 제거하고자 했다면, 타틀린은 반대로 재료와 구조, 그리고 물성 자체에 주목했다. 둘의 작품은 한 전시장 안에서 날카롭게 부딪혔고, 그 충돌은 당시 러시아 예술이 얼마나 실험적이고도 진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타틀린은 예술이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믿었다. 1913년, 그는 파리에서 피카소의 작업실에 수 없이 찾아갔다. 허름한 차림의 그를 무시하던 피카소는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타틀린은 피카소의 <기타>를 본다. 그 순간 이후, 회화를 떠나 <카운터 릴리프> 연작을 만들기 시작한다. 벽을 향해 설치된 그의 조각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향한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현실을 질문하고 있었다. 그대들은 세상과 삶에는 변주가 춤을 출 수 있다고 믿는가?라고 말이다. 전통적 조각의 좌대를 없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레타틀린의 스케치와 전시모습/1930>

혁명 이후, 그는 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예술과 기술, 노동의 통합을 꿈꾸었다.

가구, 난로, 방한복 같은 실용품을 디자인했고, 심지어 모터 없이 날 수 있는 1인용 비행기 ‘레타틀린(Letatlin)’을 제작하기도 했다. 비행기는 결국 하늘을 날지 못했지만, 그의 이상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꿈보다 무거웠다. 1930년대 이후, 예술에 무지했던 스탈린의 예술 통제가 거세지면서 구성주의 및 모든 아방가르드 미술의 제작 및 발표를 금지하자 많은 예술가들이 망명을 택했다. 마크 로스코와 말레비치도 떠났다. 하지만 타틀린은 남았다. 체제보다 땅을 선택했고, 자신의 뿌리를 지켰다. 선택은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잃는 일이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꺾지 않았다. 그에게 선택이란 체제가 아닌 자신이 태어난 땅을 위해서였다.


소련이 사회주의 체제가 되자 마크로스코, 말레비치와 같은 화가들은 타국으로 망명하였으니 타틀린은 자신이 태어난 땅에 남아 노동자들의 방한복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그를 세계적 예술가로 알려지게 만든 대표작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1919-1920>은 끝내 실현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 작품으로 파리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나, 정치적 사상과 부딪혔고, 불태워졌다. 지금은 오래된 사진 몇 장만이 그 이상을 기억한다. 타틀린의 삶에는 늘 고요한 아픔이 배어 있다. 그는 사회체제가 변하하더라도 예술이 나아갈 길을 믿었고, 그 믿음이 허상이었음을 알지 못한 채 무너졌다. 마치 제3인터내셔널기념탑이 불 사라진 것처럼. 그래서인지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속 믿음도 함께 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신념은 과연 진실한가? 언젠가 나도 이루지 못한 꿈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바랐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과 살아가는 그런 꿈처럼.



<제3인터내셔널 스케치와 설계도 및 실제 전시모습1919-1920>

그럼에도 나는, 타틀린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는 망설임 없이 예술에 자신을 던졌지만, 나는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더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그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나만의 방향을 꿈꾼다. '좋아한다’는 말은 어쩌면 나의 가장 깊은 표현이다. 그 말에는 취향만이 아니라, 나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은, 블라디미르 타틀린이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agP2d1Fv-3w

진혜림/Lover's conc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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