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에 눈을 뜬 후 가장 사랑하게 된 화가가 바로 '마크 로스코(1903-1970)이다. 로스코는 미국을 아니 전 세계를 대표하는 추상회화의 거장이라 말할 수 있겠다. 로스코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뉴욕미술대학연맹에서 공부하였으며 이것은 유일하게 그가 받은 미술교육의 전부이다. 그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세계의 경제 정치적 패권을 쥐게 된 미국은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싶었던 욕심이 발동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파리에서는 앵포르멜이라는 자유로우면서도 강한 색채를 가진 현대적 그림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문화의 중심인 유럽보다 우월하고 싶었던 미국은 CIA 등과 같은 정부기관의 후원으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미술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잭슨폴락을 시작으로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등 여러 화가들을 후원하며 그린버그라는 유태인 미술평론가와 더불어 추상회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문화와 예술 또한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은 2차 대전이라는 잔인함을 목격한 후 그림 속에 숭고함과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철학서나 사상서를 탐독하며 구상회화였던 미술을 추상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로 개척하게 된 것이다.
1.<Underground Fantasy/1940/Oil on canvas 워싱턴내셔널갤러리> 2. <무제/1940>
로스코의 초기 그림은 인간의 허무함 등의 감정이 많이 나타난다. 빠른 사회 변화로 인한 즉 기계화, 자본화되어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나 지루한 모습 등을 표현하였다. 또한 인간이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모습을 제목을 달지 않고 아주 간단한 선으로 표현하여 마치 유아들의 그림과 같이 느낄 수 있지만 오래도록 바라보면 발버둥 치는 당시 인간의 애처로움이 보인다.로스코의 그림들 대부분은 '무제(untitled)' 또는 'No(Number)'라는 제목들을 가지고 있다.
3.<Yellow,Cherry,Orange/173x107cm/oil on canvas/1947> 4.<No21./203x100cm/oil on canvas/1948>
로스코의 그림을 아는 이도 있을 것이고 생소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 이것도 그림이야?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감각적이고 중독성이 있다. 이러한특징으로 인해 로스코의 그림은 미국 그림이 더 이상 천박하지 않음을 입증해 보였다. 로스코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든 간에 그의 그림에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와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5.<Greenand Maroon/oil on canvas/1953>
6.<No14./290x269cm/oil on canvas/1960/SF MOMA/USA>
7.<Untitled/oil on canvas/1970/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7번의 붉은 그림은 로스코가 권총 자살을 하기 전 그린 그의 생애 마지막 그림이다. 핏빛으로 물든 캔버스는 강렬하다 못해 섬뜩함을 느낄 수도 있다. 로스코가 죽은 것을 발견했을 당시 그의 옆에 이 작품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로스코는 미술이 상품화되어가고, 사회가 자본화되어가는 것에 대한 갈등이 매우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회의 변화로 인해 변해가는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깊은 고뇌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스코는 토끼 가죽 아교에 건조 안료를 개어 코튼덕 캔버스에 밑칠한 다음 리퀴덱스사의 보조제에 안료를 섞어 색상을 조절했다. 로스코는 매일 아침마다 어시스턴트들에게 캔버스에 테이프를 붙인 다음 미리 정해진 대로 검정색 사각형을 그리게 했다. 처음에는 목탄으로 그린 후 튜브 유화물감을 바르고 마지막에 금방 만들어진 계란 오일 유화액을 칠했다. 이러한 방식은 고대 기법(템페라)와 최신의 발명품을 접목시킨 로스코만의 놀라운 작업 방식이다. 현재 로스코의 제작기법에 대해 미술계에선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또한 단순한 모양과 색채 속에 사람의 감정에 움직임을 주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건 관람자와 미술사가들에게는 큰 의무 같은 것이 되어 버리기도 하였다.
<로스코 채플 전경>
인간에게 있어 감정이란, 추함 미움 증오 악함 - 아름다움 사랑 그리움 선함, 낯섦 두려움 - 설렘 새로움, 욕심 오만 - 가벼움과 겸손 등의 상반되는 여러 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간다. 로스코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결은 바로 상반된 감정이 만나 충돌할 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표현한 것이다. 색에도 반대되는 색과 비슷한 색들이 있다. 이러한 반대의 색과 비슷한 색들이 만나는 정점을 즉 색과 색이 자연스럽게 만남으로써 그 만남은 뒤엉키고 설키어 서로를 흡수하며 하나의 새로운 정점 즉 자연스럽게 하나의 선을 만들어 낸다. 그러한 충돌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선은 인간이 감정을 스스로 뒤돌아보게 만들고 차분하며 고요한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는 현재 로스코 채플이 있다. 채플이라고 하여 어떤 이들은 사이비 종교와 함께 엮어 표현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곳은 신을 만나기 위함이 아닌 영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장소이다. 채플을 찾는 이들은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 감정의 파도를 들여다보며 자신과 자신만의 만남을 유도하려는 이들로, 전 세계인들이 찾는 유명한 명상 채플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 곳을 다녀오려 한다.
오늘의 글도 다소 길어 읽어야 하는 독자들에게 또 한 번의 부담을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나에게 로스코의 그림은 ‘사랑’이다. 거실에는 로스코의 커다란 그림 두 점이 바닥에 깔려 있다. 그리고 나의 아들도 작은 로스코 그림 액자를 자신의 책장 가운데에 놓아 두었다. 로스코의 그림은 단순히 한 번 스쳐 보는 그림이 아니다. 조용히, 차분히, 가만히, 자세히 오랫동안 들여야다 봐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그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자신과 한 번 만나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