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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e Dec 15. 2019

choijak님의<애매해서 외로운 아이>를 읽고.

나에게도 국민학교 시절이 있었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글을 읽었다. 늘 나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따듯함을 보여 주시는 한 작가님의 글이었다. 글의 내용은 그녀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를 회상한 것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부당 사회가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곳은 커다란 회사가 있어 매우 부유한 동네였다. 아빠가 그 회사에 다니는 아이들은 주로 서울에서 자라다 내려온 아이들로 뽀얀 피부에 이쁘고 고급스러운 원피스 그리고 윤기와 향기가 폴폴나는 검은 긴 머리에 리본 핀을 꼽은채  빨간 책가방을 달랑 메고는 빨간 구두와 함께 집을 향해 걷던 모습들이 지금도 생각난다. 학교에서도 특급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늘 성적과 관계없이 반장이나 부반장을 도맡아 했었다. 그리고 자기들은 우리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듯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매우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네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나에게 크게 말하지 못하였다. 그 이쁘게 치장하고 다니던 아이가 나와 싸워 울어도, 남자아이가 나에게 지우개를 뺐거나 내 가방으로 장난을 쳐도 나는 오히려 그래 너 가져가 그리고 내일 내 가방 가져오지 않으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숙제도 네가 해와야 한다라는 식으로 가방 없이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선생님 이름은 밝히고 싶으나 참으련다. 그는 갓 입학한(나는 또래보다 어린나이에 입학을 하였다) 어린 나에게 수업시간 중 이유 없이 나의 체육복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갑자기 운동장 밖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너무도 억울했었지만 눈물을 꾹 참고 쉬는 시간 3학년이었던 언니에게 달려갔다. 언니는 운동장에서 나의 체육복을 들어 먼지를 털어주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나의 교실로 향하여 담임선생님에게 돌진하듯 달려들었다. (나의 언니는 매우 차분하고 조용하며 모든 것이 너무도 뛰어나 어린 시절부터 감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선생님에게 나의 체육복을 던진 이유를 묻고는 언니는 말했다. "내 동생이 울잖아요"  나는 그때 언니가 나의 히어로 같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다. 어느 커다란 보험회사 주최의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내가 그냥 끄적거려 제출하였던 글이 글쎄 전국에서 우수상, 나의 언니는 최우수상을 동시에 받게 되었었다. 담임선생님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의 자리를 그 회사에 다니는 집 아들 그러니까 돈 많고 잘 생겼는데 공부도 늘 잘하던 그 아이 옆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선생님 저는 이 자리가 좋은데요?" 선생님은 왠지 모르게 나를 늘 어렵게 대하였던지라 조용히 부탁을 하셔 나는 선생님이 지정해 주신 자리로 옮겼다. 그 아이는 매일 웅변을 해야 해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단다. 그러니 나에게 그의 글을 대신 쓰란다. 나는 그 아이의 글을 한 자도 써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글은 더 열심히 썼던 기억이 있다. 이후 그 아이는 매일 숙제를 핑계로 우리 집에 왔었다. " 야~ 000 오늘 숙제가 뭐야" "야~~000 오늘 준비물이 뭐야?"라고 물으며. 그 아이는 웅변학원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늘 일찍 학교를 빠져나가야 했다. 나는 "야!!! 너는 그것도 모르면서 학교는 왜 다녀 그리고 왜 매일 나에게 묻는 거야? 아이씨, 짜증 나"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는 매일 나를 찾아왔었다.

  

  우리들은 스무 살이 되었다 아니 나는 아직 십 대였다. 어느 토요일 오후 전철역에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서울로 상경 후 그 아이와 첫만남이었다. 그는 반대편에서 손을 흔들며 거기 서 있으라고 나에게 흥분한 듯 손짓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저건 아직도 지가 잘난 모양이지 SKY 대학 갔다고 지금 나한테 자랑하는 거야 뭐야'하는 맘으로 막 도착한 전철을 낼름 타 버리고 나의 갈길을 갔던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그는 등학교부터 대학을 다닐 때까지 나를 좋아했었단다. 그의 아버지가 나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어린 시절 자랐던 집으로 잠시 내려와 있었다. 그때 큰 아이가 한 두 살 됐으려나. 아들을 퍼대기로 둘러 매고는 거리에 서 있었는데 웬 여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더니 대뜸 하는 말이 자기 남편은 누구란다. 남편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줬는데 이 집에 살던 여자 아이를 자기가 그렇게 좋아했었단다. 나는 '그게 나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아줌마가 되어 머리는 산발을 하고 옷은 펑퍼짐하게 입고 아이까지 퍼대기로 엎고 있는 모습에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담임 선생님은 우연히 30대쯤 잠실 00 백화점 정문 앞에서 마주친 기억이 있다. 머리스타일은 예전 그대로였고 얼굴은 시간을 이길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어린 시절이 떠올라 이렇게 또 글을 쓰고 있다. 한없이 자기를 보호할 수 없는 어린 나이와 빈부 격차가 나란 사람을 정해 버렸던 그 부당 사회가 바로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듯싶다. 돌아보니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다.


"야~~김00 너는 뭘하며 나이들어가니? 너도 이젠 반백살이구나ㅎㅎ"




Note:  사진은 저의 모든 사랑인 감자 몰티즈 3살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놀아 주지 않았더니 나의 베개에 올라가 잠에 빠져 있네요. 새근새근~~~ 저에게 감자는 사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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