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셀린의 영화 이야기> 매거진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화는 가끔은 어른의 세계를 유머스럽게 꼬집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도 적랄하게 그 삶을 보여주어 어른이라는 자리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는 후자의 경우이다. 영화를 십오육 년이 훨씬 넘은 시간 전에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단 하나의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이란과 이라크의 오랜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국경마을인 바네(Baneh실제지명)의 허름한 집에 다섯 남매가 살고 있다. 그곳에는 아빠는 밀수 일을 하다 지뢰를 밟는 바람에 산산조각 나 버렸고, 엄마는 아기를 낳다 그만 죽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버린 다섯 남매는 삼촌에게 이용? 당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학교를 그만두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아윱
12살 소년 아윱(Ayoub)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기에 스스로 어른이 되고 말았다. 아윱은 누나와 발육이 안 되는 병에 걸린 남동생과 여동생 둘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아윱은 동생의 새 공책을 사 주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노동의 대가를 다 지불하지 않는다.
이라크로 수술을 위해 산을 넘던 중 아픈 동생의 차가워지는 손을 만져주는 아윱
어느 날 아픈 남동생이 더 아프게 되고 지금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곧 죽게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결국 삼촌은 누나를 이라크의 나이 많은 남자에게 돈으로 팔아넘기려 한다. 누나 또한 십대의 어린 나이지만 동생의 수술을 위해 결혼을 선택하였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신랑 집에서 보내온 것은 나귀 한 마리뿐이었다. 그렇게 강제로 집을 떠나는 누나를 향해 동생들은 울부짖으며 헤어지길 거부한다. 그러나 누가 이 아아들의 편이 되어줄까? 이 순간 나는 신(god)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누나는 끌려가듯 집을 떠난다. 아윱은 지붕 위로 올라가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누나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라크의 늙은 남자에게 팔려가는 첫째누나
큰 누나가 집을 떠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슬퍼하는 아윱
결국 아윱은 누나의 신랑집에서 보낸 나귀를 팔아 동생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촌과 함께 이라크로 밀수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란과 이라크는 전쟁 중이었으며 국경을 넘기 위해서 험난하고 어디 묻혀 있을지 모르는 지뢰를 피해 다녀야 하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몸이 아픈 동생은 거리에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윱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란의 겨울은 쏟아지는 눈과 찬 기운에 어른조차 길을 나서기 힘든 계절이다. 아윱과 밀수꾼들은 험한 산길을 넘기 위해 말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인다. 술에 취한 말들은 취기로 인해 산길을 잘 걷고 무거운 타이어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들은 술을 마셔야 한다. 폭풍우를 헤치고 설산을 넘기 위해
말들은 술을 마신다. 아윱은 집에 남아 있을 동생들을 안아준다 그리고 술에 취한 말들의 몸에는 무거운 타이어를 싣고 아픈 동생을 수술시키기 위해 엎고는 길을 떠난다. 산길은 험하다. 눈보라 또한 세차다. 칠흑 같은 밤이라 앞은 더욱 보이질 않는다. 아윱은 집에 남아 있는 동생들을 위해 그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야 만 했다. 한참을 걸었을까? 해가 뜨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때 아윱의 나귀가 너무도 술에 취에 걷지를 못한다.
산을 넘던 중 아윱은 애를 쓰며 나귀를 일으키려 하나 술에 취한 나귀는 일어나질 못한다.
노새들이 너무 취해 못 걸어 일어나 제발!!!!
아윱은 온갖 애를 쓰지만 그 어떤 어른도 아윱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 순간 국경지대에 숨어 있던 강도 떼 들이 나타난다. 다른 어른들은 모두 말을 두고 도망가기 바쁘다. 총소리가 나고 타이어는 하얀 설산에 동그란 바퀴 자국을 내며 굴러 내려간다. 말들은 술에 취해 이리저리 뛰며 하얀 산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아윱은 나귀를 버릴 수 없다. 누나가 남겨준 유일한 재산이며 동생을 수술시킬 나귀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두고 가지 마세요. 저희는 나귀를 데리고 이라크로 가야 해요.
세상은 참 이율배반적이다. 왜 똑같은 삶이 주어졌거늘 누구에겐 그 삶을 누릴 자격이 없을까? 나는 영화보기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아랍권의 영화는 늘 맑은 옹달샘 같은 시적인 느낌을 준다. 생각이나면 다른 생각이 또 꼬리를 계속 물게 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란 엉뚱한 생각이 아닌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아주 신선하게 나의 몸 속에서 쏟아난다. 영화는 보는 이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질문이 던져지고 이것은 계속 반복되어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쿠르드족의 영화로 감독 또한 쿠르드족 출신이기에 영화는 더욱 신랄하게 살아 꿈틀거린다.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터키의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란어를 사용하여야만 한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에서 쿠르드족 고유 언어를 사용하였다. 이렇게 보호받지 못하는 민족의 어린아이들의 비참한 삶을 감독은 영상에 담아 전 세계에 알렸다. 영화는 개봉한 당시 2000년 제53회 칸느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만약 이 영화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코뿔소의 계절 또한 추천하고 싶다. 글을 마치려니 가슴이 또 다시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