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를 잘 적어야 하는 이유
당신의 당신의 첫 출근을 기억하나요? 주어진 자리는 아마 가장 문에서 가까운(현관문을 열거나, 뒤에 선배들이 눈만 들면 모니터가 보이는) 자리였을 겁니다. 아마 사수쯤 되는 사람이 전화는 세 번 벨이 울리기 전에 가장 먼저 받는 거라고 알려주었을 거예요.(물론 요즘은 아닌 곳도 많습니다) 사무실 문화에 따라 복장이나 슬리퍼의 규율이 있는 곳도 있을 것이고, 사용하는 언어에 제약을 두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는 형, 누나, 언니, 오빠 하면서도 나한테만 부득불 호칭을 강요해서 왠지 섭섭하기도 하죠. 점심 먹을 때는 또 얼마나 불편하고요.
다른 무엇보다 아마 당신은 이 환경이 너무 낯설 거예요. 생전 처음 듣는 낯선 단어들이 쏟아지고, 이따금 어디 가서 무얼 가져오라고 하는데 그게 어딘지, 그 물건이 뭔지 도통 모를 순간이 하루 종일 계속될 겁니다. 아무리 동료라지만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괜스레 친하게 다가오는 게 부담 스러 울 수도 있고 반대로 친해짐을 강요받아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또 눈치를 보겠죠. 이 회사는 정시에 퇴근하는 회사인지, 관장님, 부장님 눈치 보다 일어나는 회사인지 눈치껏 일어나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 하루하루가 반복되겠죠.
희망적인 사실은 이 모든 건 시간이 지나면 이내 체득이 된다는 겁니다. 아마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이 사이클을 한 달만 반복하면 완벽히 그 사무실에 적응하게 될 겁니다. 한 달 뒤에는 눈치도 보지 않고, 가끔은 농담도 던질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 모든 게 적응되더라고 딱 하나 눈치만으로는 조금 벅찬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직장에 간 진짜 이유, 즉 '일'입니다.
'뭐든 좋습니다. 적어요.'
1. 일단 쓰세요
제가 신입직원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요청이자 부탁하는 말입니다. 마땅한 사수가 없는 신입이라면 기관 다이어리가 있다면 챙겨주기도 하고 마땅치 않다면 직접 구입해주기도 합니다.(물론 요즘은 아이패드가 대세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옛날 사람인지라..) 그리고 기관의 연간 스케줄과 월간 스케줄, 그리고 주간회의 자료를 그대로 자신이 알아볼 수 있게(절대로 놓치지 않게) 옮겨 적으라 이야기합니다. '이것쯤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죠.
맞아요. 그거 꽤 귀찮은 작업입니다. 더군다나 볼펜이라는 걸 졸업 전 마지막 기말고사 이후 한 번도 쥐어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볼펜을 손에 쥐고 적어야 합니다. 오늘 만난 클라이언트의 이름, 잊어버리면 큰일 나는 후원자의 이름, 곧 외울 수 있겠지만 지금은 자꾸 헷갈리는 직원들의 이름, 오늘 점심이 예약되어 있는 식당이름까지요. 일단 쓰세요.
2. 스케줄 관리는 일의 기본
어릴 적 동그라미에 24시간을 그려놓고 하루 일과표를 그렸던 기억이 있나요? 네 저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오늘 당신의 하루를 복기해 보세요. 대부분의 사람은 오늘 할 일을 구글 캘린더 task에 적거나, 혹은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그 일을 지워가면서 하루를 보냈을 겁니다. 거기다 옆자리의 직원이 차 마시러 가자 하면 잠깐 같이 가고, 이것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면서요. 오늘 갑자기 불쑥불쑥 떨어지는 일도 꽤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task를 모두 지우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하루를 보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모든 일을 오전에 해치우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서야 그 일을 몰아서 하기도 하죠. 아까 언급했던 예상치 못했던 이벤트들을 오늘 중간중간에 끼워 넣기도 하면서요.
물론 STJ계열이 아닌 팍팍한 일정을 싫어하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식의 러프한 관리가 좋다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제가 말씀드리는 건 오늘 나의 시간을 시간 단위로 쪼개 그 시간에 할 일을 정하고 그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스케줄을 정해두고 그 시간에 그 일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보고서 작성이 2시간이 소요된다 싶으면 오전 10~12시까지는 보고서 작성 시간으로 지정해 놓는 거죠. 이 시간에는 이것을 "먼저" 하는 겁니다. 그러면 차 마시러 가는 시간, 옆 사람의 업무를 대신 봐주는 시간에 나의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갑자기 떨어지는 이벤트가 어쩔 수 없기도 하겠죠. 하지만 가능한 한 나의 시간을 확보해야 그 이벤트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늘 하루를 복기해 보세요. 출근하고 정신없이 떨어지는 일들을 하나하나 쳐내다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루종일 못한 날이 있지 않나요? 갑자기 야근이 생기고, 야근 덕에 저녁에 해야 할 일을 놓치고... 그게 디폴트 값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거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의 주인은 여러분입니다. 내가 일과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3. 회의록은 직접 쓰세요
아마 여러분이 막내라면 회의록을 작성 업무가 주어졌거나, 아마 주어질 예정일 것입니다.(이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회의록은 기관이나 상사의 성향에 따라 기록하는 법이 아주 다른데요. 어떤 회사는 사람의 멘트 하나하나까지 적어두는 곳도 있고, 어떤 회사는 그 회의에 논의된 내용과 결정된 내용을 심플하게 적어두는 곳도 있습니다.(대부분이 후자)
그래도 처음에는 디테일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참석자의 멘트 하나하나를 요약해서 적어두는 것입니다. 예전엔 녹음기를 켜두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 부분은 개인정보 이슈도 많고 참석한 대부분이 싫어하니 시도조차 하지 마세요. 다만 요즘은 스마트폰에서 오고 가는 대화를 문서화시켜 주는 앱들이 있으니 이걸 활용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누가 어떤 대화를 했으며, 그 뉘앙스가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그 회의의 결론이 무엇이었는지 최대한 상세하게 적으세요. 그리고 회의록 담당자라면 그 상세한 회의록을 컨펌받으세요. 너무 디테일하다면 상사가 앞으로 이런저런 것들은 생략해도 좋을 것이라는 코멘트를 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내용이 간략하다면 '널 어디부터 가르쳐야 하니'라는 쳐다볼 텐데 그 눈빛은 꽤 오래가고 정신건강에도 매우 해롭습니다.
만약 회의록을 따로 작성하는 문화가 없더라도 회의록을 작성하는 건 업무에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저도 이제 굳이 회의록을 쓰지 않아도 정리된 문서를 보고 받을 만큼의 연차가 되었지만 제가 들어가는 회의에서 만큼은 나름의 회의록을 직접 정리하곤 합니다.
회의록을 직접 손으로 쓰게 되면 그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직관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음 회의, 다음 스텝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일의 주도권을 나도 모르게 쥐게 되는 거죠. 회의 결과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분명 같은 회의를 했는데도 참석자들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분명 같은 회의록을 보는데도 그날의 공기나 분위기에 따라 같은 글자를 각자 자기 식대로 해석해 버리거든요. 각자 다른 것도 문제지만 혹 해석에 따라 이해관계가 부딪힌다면 이때는 회의록을 기록한 사람의 의견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작성하지 않은 이상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럴 때 내가 작성한 회의록은 상황을 주도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일은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진행할 때 내 것이 되고, 경험이 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잊어버립니다. 잔뜩 긴장한 신입 때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렇기에 반드시 다이어리와 볼펜을 손에 쥐고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잘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히스토리를 기억하고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주도하며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써야 합니다. 이 버릇은 꼭 들이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간혹 스마트폰으로 쓰면 안 되냐는 질문을 받습니다만, 우리나라 정서 상 스마트폰을 들고 무얼 한다는 건 노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 경우 반드시 '죄송합니다만 스마트폰으로 기록 중입니다'는 멘트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