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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16. 2023

우리를 회복하는 말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저

그런데 우리 모두 그 단어를 쓰지 않으면 절대 자기 자신을 말하지 못하는 공통의 단어가 있다. 우리 모두 그 단어가 필요하다. 뭘까?

바로 ‘나’라는 단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나’라는 단어에서 수없이 많은 좋은 이야기들이 솟구쳐 나오는 것이다. 나라는 단어에서 나온 이야기가 이 슬픈 세상에 기쁨을 만드는 것이 내가 가장 보고 싶은 풍경이다. 저마다의 고유함이, 이름이, 개성이, 세상에 잊을 수 없는,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선물하는 것을 보고 싶다. (전자책 p.17)


'나'라는 단어에 얽힌 오해가 있다. 위에서 소개한 이 책을 시작할 때 프롤로그에서 적힌 이  '나'라는 단어가 그랬다. 사실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단어인 건 확실하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에 충분하고 그 사랑을 받고 또 나누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세상엔 이 명제에 충실한 이들도 SNS에 꽤 많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경우는 부정적인 지적과 편견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이런 세상과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건 오직 스스로의 내면에서부터 오는 힘, 자존감이라 이름하는 이 힘으로부터 기인하고 이 자존감은 보통 어릴 적부터 받은 사랑에서 자라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어른들은 언젠가부터 '나'를 강조하며 아이들을 양육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중요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 '남'과 '우리'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나'의 문제만, '나'의 상처만 이야기했지 '남'의 아픔과 '우리'의 사정 따윈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의 디스토피아는 만들어졌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라며 길거리의 처음 보는 이들에게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르는 현장을 우리는 이제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그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 게 싫었다'고 말한다. '나' 말고는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세대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또 '나'를 이야기하자니..


심드렁하게 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런 나의 책에 대한 편견들이 어떻게 깨져나가는지 작가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저자가 책 전체를 통틀어 하는 질문이다. 저자는 외딴 항구의 어부, 뒤늦게 글을 깨우친 할머니, 911생존자와, 콜롬바인 총기사건의 유가족들, 가까이는 세월호 희생자에 이르기까지 그 죽음과 같은 시간들을 버티고 살아낸 인물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그들을 오늘까지 살게 해준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모두가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들을 살아있게 해 준 '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이에게 그 언어는 '미래'였고 또 어떤 이에게 그 언어는 이미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또 누군가에게 그 언어는 '사랑'이었다. 그들은 살며 자신의 그 언어를 허투루 치부하지 않았다. 붙잡았으며, 살아냈고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함께했다. 


당신이 당신의 가장 멋진 점을 표현할 단어를 찾아내면 정말 좋겠다. 우리의 좋은 결말을 위해서 어떤 단어가 필요한지 찾아내면 정말 좋겠다. 우리가 언젠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실컷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지금은 말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공허와 잔인함이 있지만 언젠가 우리의 말과 의미가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우리가 말을 공유하고 있다니, 그런 멋진 일이 있다니’라고 느낄 만한 이야기가 많아지면 정말 좋겠다. (전자책 p.236)


저자는 분명한 소리로 말한다. 이 슬픈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기쁜 말, 당신의 언어를 찾고 우리에게 들려달라고. 그리고 그는 기대한다. 이 언어들이 모이고 노래하게 된다면 세상은 어쩌면 치유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언어들을 모았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좋았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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