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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19. 2023

삶이란 완벽을 향한 과정임을

<어느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이혜림 저

장롱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자취생들이라면, 특히나 왕자헹거를 위시한 헹거를 층층이 쌓아두고 사는 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일이다. 끼익 끼익 불길한 소리와 함께 어느 순간 일시에 우두두두 무너져 버리는 행거와 다시는 일으키지 못할 것 같은 옷가지들. 다시 일으켜 세우고 엉망으로 엉켜버린 옷가지들을 바로하는 일이 어떻게 생각하면 큰일이 아닐 것 같지만 어느 밤 쪼그리고 앉아 그 큰 헹거를 세우고 있자면 어느 순간 자괴감이 찾아오곤 한다. 물론 잠깐이지만 새로 만들어진 숨숨집에 신나 이 옷 저 옷에 털을 묻히고 다니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잠깐의 기쁨이 있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은 있을 법한 이 경험 이후 저자는 삶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넘어지면 또 세우면 아닌가 싶은데 저자는 아예 다시는 헹거를 무너뜨릴 일을 만들지 않기로, 아니 다시는 헹거 따위를 설치하지 않기로 한다. 미니멀 라이프. 맞다. 이 책은 한때 유행했던 그 삶의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스무 살에 대학진학과 함께 처음으로 집을 나왔다. 당시 기숙사로 향하는 내 짐은 이불 한 채와 옷가지가 든 배낭 두 개가 전부였다.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지만 방학 때는 기숙사를 나와 친구나 선후배의 자취방을 전전해야 했다. 배낭 두 개에 이불 한 채. 그것도 마음먹으면 언제든 버려도 괜찮을 것들. 그때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사실 가지지 못한 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태도이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미니멀 리스트 선언이었다.


환경에 의해 강요받았던 미니멀리스트 선언은 돈을 벌어 월세를 내는 삶을 영위하자마자 해제되었다. 작지만 내 공간이 생기니 나는 옷이든 책이든 죄다 쌓기 시작헀다. 효율적인 공간관리를 위해 가구를 들였고, 최적의 컨디션(예쁨)을 위해 인테리어들에 눈독을 들였으며, 나의 아이덴티티와 취미를 위해 피규어들을 들였다. '책은 재산'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또 그 말을 새겨듣고 책을 그렇게 사모으기도 했었다.(이 책들은 지금도 처치곤란) 

가진 것이 늘어나니 집이 좁아졌다. 원룸에서 투룸, 투룸에서 단독주택으로 나의 집은 확정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화들짝 놀랐다.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고 이것들을 정리할 여력도 없었다. 가방 두 개만으로 충분했던 이삿짐은 혼자 감당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그즈음 꽤 많은 미니멀리스트에 관한 책을 접했다. 물론 결론적으로 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지만 그렇게 살기는 꽤 어려운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미니멀이든 맥시멀이든 삶의 형태이고 자신이 더 행복한 삶의 방식을 택하면 된다. 저자는 이를 분명히 하고 자신의 삶을 방식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공간과 라이프, 태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책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저자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한다. 사실 공간과 라이프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미니멀리스트를 다룬 책에도 흔하게 있는 내용이었다. 내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저자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미니멀을 실천하며 저자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삶의 형태가 적응이 된 것 같았다. 소제목이기도 한 80%만 사용하라는 언제나 100%로 살아가는(그렇지 않으면 못살았다고 생각해 버리는) 내게 꽤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옳다. 우리에게는 빈둥거리고 멍 때릴 시간이 필요하다. 일을 하는 시간은 그 시간을 딛고 발생활터인데 나는 너무 빡세게 내 삶을 갈아 넣고 있었다. 

단순히 가지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 삶의 태도는 인생을 가벼이 만들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삶.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없이, 과거에 대한 미련 없이 오직 현재에 충실한 삶.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삶이란 완벽을 향한 과정임을 알아가는 삶. 이제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그 태도가 부럽기도 했다.


누군가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을 추천해 달라 하면 주저 없이 꺼내들 것 같다. 좋은 책이다.



나 자체가 이미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누군가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어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불완전한 상태를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삶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편안해진다. 내 삶이 가벼워졌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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