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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21. 2023

그만 잊으라는 말 대신에

<충분히 슬퍼할 것> 하리 저

며칠 전 엄마의 기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나와 동생은 기일을 즈음하여 산소를 찾는다. 한창 여름이고 벌초를 앞둔 시즌이라 산소로 가는 길은 늘 풀과 가시엉퀴 천지다. 아무렇게나 자란 풀떼기를 헤치고 숲인지 묘인지도 모를 공간에서 엄마의 비석을 발견해 냈다. 지관이 이 묫자리가 엄청난 명당이라고, 나와 내 동생은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장담했다던데 아마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사기꾼일 것 같다. 나도 내 동생도 아직은 좀 더 살아봐야겠지만 어느 날 로또가 당첨되지 않는 한(그것도 사야 당첨이 되지...) 부자가 될 것 같아 보이진 않고, 첩첩산중에 엄마를 두고 한 번씩 찾아오는 길만 더 힘들어져 버렸다. 그랬다. 나는 이미 30년 전 엄마를 세상에서 떠나보냈다. 


엄마를 떠나보낸다는 것. 겪어보기 전에는 차마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존재인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것. 그 또한 살아보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 헤어짐을 경험했거나 비슷한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웹툰이어서 쉽게 읽히고, 감정 또한 날 것 그대로 전달된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장난치고 밥 먹었냐 물어보고 걱정해 주던 엄마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위로라는 걸 한다. 그런데 겪어본 사람은 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무턱대고 살아야 한다니. 그것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어떤 폭력이 되는지는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아무렴.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과 애도, 그리고 상실의 감정과 그에 따른 에피소드들이 기록되어있는데, 나 역시 그때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고 조금씩 이야기하는 편이다. 위로할 말이 없다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가만히 그의 곁에 있어만 주어도 괜찮다. 굳이 어떤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엄마를 떠나보낸 후 저자는 한동안 아주 깊은 슬픔에서 올라오지 못한다. 상담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만 하필 그가 찾아간 상담센터 몇 곳은 아주 지랄 맞은 곳이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에니어그램 강사과정을 거치며 상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상담을 하겠다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여럿 본 적이 있다. 남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옮기고, 판단하고, 단정하고 짧은 이론으로 재단하는 사람들.(강의 중 그 짧은 10분에도 그 정도 뒷담화를 퍼부을 정도면 자리 깔고 하는 남 얘기는 어떨까) 남의 상처에 너무 쉽게 규정을 들이대고 이것이 정답이라 외쳐버리는 사람들. 다행히 저자는 그 이후 좋은 상담가 몇 명을 만나 조금씩 슬픔의 늪에서 벗어난다. (물론 가끔 다시 그 늪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저자는 슬픔에 대한 세간의 충고 따위 치워버리고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 가장 슬픈 곳에서 그는 슬퍼했고, 충분히 추모했으며 그렇게 죽은 자에게 살 힘을 얻었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엄마의 상실이 너무 어릴 적이기도 했고 나라도 단단하게 사는 것이 남은 가족에게 필요하다 생각해 버린 나는 엄마를 지워버리고 살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게 그 애도의 시간이 없었음을. 괜찮은 줄 알았는데 사실 나 하나도 괜찮지 않았음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지금도 그 사실이 슬픈 건 변함없지만 그 슬픔을 딛고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것. 오늘은 제육볶음을 먹겠다는 그의 당참에 마음이 그만 풀려버렸다. 작가님의 바람대로 아마 작가님의 그림은 하늘 어딘가에 가 닿았을 것 같다. 매번 실패하지만 나도 다시 애도를 시작한다. 나의 마음도 하늘 어딘가에 가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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