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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Nov 17. 2023

기후위기 앞의 인간의 마지막 탈출

<탈인간 선언> 김한민 

이렇듯 인간이란 협소한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다른 존재들, 타자이다. 고로,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타자에 주목하는 것은 탈인간의 출발점이다. 타자를 알아간다는 건, 가령 "알고 보니 저 동식물이 무슨 희귀병을 치유하는 재료로 쓰인 다더라" 같은 사실을 발견해야 비로소 존재 가치가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도구적·실용적인 관점을 떠나 우리에게 여하간의 쓸모가 없더라도, 오롯이 존재 그 자체로서 (타자의) 살아갈 이유를 긍정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라는 윤리적 명령이 각 인간의 쓸모와 무관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조건 없는 타자 긍정은 우리 지식체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탈인간는 인류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p.13)

책 너머 TV 속에 아이슬란드의 화산이 곧 폭발하고 주민들이 대피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가. 몇십, 몇백 년이 사람이 보기엔 긴 시간이어도 대자연 앞에선 그저 찰나의 시간일진대 사람들은 이미 예고되어 있는 화산 폭발 지대에 집을 짓고 마을을 일구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 모두가 어쩌면 대를 이어 일군 집과 땅을 모두 두고 떠나야 한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 없다. 자연이 그러겠다면 그런 거니까.

어릴 적 장마철이면 꼭 지대가 낮은 마을은 물에 잠기고, 사람들이 학교 같은 곳으로 대피하곤 하는 일들이 매년 있었다. 어떤 해는 TV에서 또 어떤 해는 인근 마을이 그렇게 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이제 이런 일들은 상하수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나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로 추억 속에 머물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년 전 그 하도 많은 동네 중 강남, 서울 곳곳에서 갑자기 불어난 빗물에 반지하가 잠겨 버리고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수몰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름 아닌 21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 중 하나인 서울에서 말이다.

곧이어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 계도 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환경에 관한 뉴스인데 이어지는 해설은 이것이 소상공인 표심을 의식한 총선용 정책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환경에 관한 뉴스인데 계도 기간이 끝날 것에 대비해 종이 빨대를 열심히 만들어온 회사들이 우리는 이제 망했다며, 이 재고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정부가 대책을 세우라는 이야기만 들려온다. 환경문제인데… 정작 누구도 종이 빨대를 써야 할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기후 위기. 2022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다. 우리는 비가 오면, 미세먼지가 들어차면, 날이 너무 추우면, 이런 단어들을 검색하고 곧 잊어버린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잠깐 문어를 먹지 못하는 1인이 되었다가도, 금세 원래의 식단을 되찾는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꽂혀 죽어가던 거북을 보고 으악하다가도 콜라에 꽂을 빨대를 찾는다. 도대체가 나는 어찌 된 인간인가.

신은 인간을 창조하며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 명했다고 한다. 이 다스림은 보살핌의 다른 말일 진대, 어떤 인간은 이를 오해해 자연을 파괴하고 정복하는 걸 당연시 여겼다. 오직 인간을 위해,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공격하고 정복해 왔다. '타자에 대한 이해'가 허용되는 범위는 오직 같은 인간(어떤 경우는 같은 인종) 일 따름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탈인간 선언이라고. 존재하는 그 자체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인간이 가지 않는 유일한 길.

죽어가는, 아니 어쩌면 이미 죽어버린 지구 앞에 이제 정말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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