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일일 1,2> 마츠모토 타이요 저
내가 처음 접한 만화가 아마 까치였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은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중동에 돈 벌러 가고 새엄마를 싫어하는 이야기, 그럼에도 여동생을 아끼고 그러다 결국 새엄마와 화해하는 훈훈 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사실 하나도 어린이 같지 않은 만화였던 것 같다. 이후 나디아,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나의 취향을 이제 와 고려해 볼 때 나도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맞다. 이미 웹툰으로 넘어와 버린 만화 시장에 나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신카이 마코토 사이를 헤매고 있다. 이현세의 신작은 이제 나오지 않으려나.
그러던 중 이 만화를 발견했다.
일본 만화의 거장 '마츠모토 타이요'가 그린 만화에 관한 만화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봉준호 감독이 좋아하는 만화가라 직업 언급하기도 했고, 원피스의 오다 에이치로가 천재 만화가라 극찬하며 존경하는 만화가다)
만화가들의 만화가로 불리는 저자는 2024년에 일본에서 아직도 손으로 만화를 그리는 이들의 삶을 우리게 보여준다. 마치 저자 자신의 모습인 것 같은 중년 만화 편집자 시오자와는 시대에 밀려 자신이 창간한 만화잡지가 폐간된 것에 만화 읽을 접기로 한다. 그렇지만 결국 만화인이었던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꿈꾸는 만화잡지를 만들기로 하고 자신이 평생을 동경해 온 만화가들을 찾아간다. 그들은 모두 펜을 내려놓고 경비원, 캐셔, 학습지 삽화가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끈질긴 설득에 다시 만화가들은 펜을 잡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이들이 다시 만화로 성공하는 스토리는 아니다.(아직 3권은 발간되지 않았다..!!) 책은 그저 담담히 시대에 밀려 꿈을 접어버린 이들의 오늘과 그들의 꿈과 고민,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는지 모를 것들에 대해 들려준다.
"그렇지만요, 당신이 다시금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만화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꿈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지만 시대에 밀려 그 일을 내려놓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책에서 그려지는 만화가라는 직업처럼, 우리 곁의 수많은 직업들이 기계에 혹은 AI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이라 이름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기계에게 맡기고 사람은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는 메시지는 옳다. 세상은 이미 변했다. 하지만, 방망이 깎던 노인의 방망이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기계가 깎은 방망이의 온기는 아무래도 조금은 다를 것 같다.
낭만이다. 자신의 업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한 이들의 삶에서 나오는 향기. 거기는 누구든 쉽게 말할 수 없는, 말해서도 안되는 무게가 숨겨져있다. 그리고 그 삶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경외하게 된다. 존중이다. 사람에 대한, 대가에 대한 존경.
아직 채 마무리되지 않은 책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미 출간된 두 권에는 이 낭만이 넘치도록 흐른다. 그리고 당신의 낭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책에는 편집자 하야시가 세상 밖으로 끌어낸 만화가가 등장한다. 고양이 몇 마리와 삶을 연명하는 그는 하야시의 바람대로 최고의 만화가가 된다. 물론 그는 그 성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길에서 우연히 그의 만화를 보물로 여기고 부적처럼 들고 다닌다는 팬을 만났을 때.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내가 내뱉은 이야기에 삶을 이어나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그렇게 우리 모두는 알든 모르든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있다는 게 괜히 시큰거렸다.
3권은 언제나 오려나. 간만에 낭만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