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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Feb 15. 2024

오래된 질문, 당신은 누구인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 딱히 왜인지 이유를 말하긴 좀 어렵지만 하여튼 좋아한다. 그의 이름을 알린 <상실의 시대>가 딱 나의 대학시절 유행했고, 그때부터 하루키의 소설은 다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단한 감동이나 무언가 설명하지 않고는 못 배길 커다란 앎이 몰려온 것도 아니다.(물론 그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스스럼 없이 예라고 답한다. 


이 책은 1980년에 중편소설로 문예지 <문학계>에서 출판되었다. 당시만 해도 신인작가였던 하루키는 이후 여러 문예지에 실었던 단편들을 엮어 책을 출판하곤 했는데 단 하나 빠져있던 작품이 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었다. 그렇게 하루키 덕후들 사이에서도 미스터리에 가까웠던 이 책이 4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나는 이 책은 선물 받은 후 연휴를 기다렸고, 하루의 시간이 주어지자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갔다. 

하루키의 거의 모든 책이 그렇지만 덕후들은 이 초현실적인 경계를 즐기고, 이 논리도 순서도 없는 장난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하루키의 이야기는 고역이다. 이 책도 그렇다. 


소년과 소녀는 여느 고등학생 연인이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어느 이상 다가오는 걸 막아서며 막연히 어느 '도시' 이야기를 건넨다.  어느 날 소녀가 사라지자 소년은 직감한다. 소녀가 그 '도시'로 떠났음을. 소년은 소녀를 찾아 도시로 가기로 한다. 벽을 높이 쌓은 도시의 입구의 문지기는 이 문을 넘어서면 다시는 본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 한다. 소년은 그림자를 떼어버리고 도시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가 된다. 소년은 소녀를 마주하지만, 소녀는 소년을 알아보지 못한다. 소년은 도시에서 도망치기로 하지만 문지기의 말대로 소년은 나갈 수 없다. 하지만 떼어버린 그림자가 있다. 소년은 그림자의 탈출을 돕고 도시 안에 남는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는 중년이 된다. 출판업계를 그만두고 어느 작은 마을의 도서관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전임 관장인 고야스 씨의 유령과 교류하게 된다. 이상한 일은 하나 더 있는데 도서관의 모든 책을 무서운 속도로 읽어 내려가는 M소년이 그러하다. 어느 날 소녀처럼 M소년도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나는 직감적으로 소년이 그 '도시'로 향했음을 알게 된다. 소년을 찾아 나는 언젠가 마주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도시의 벽 앞에 선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와 만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 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p.684)


도시 안에서 꿈을 읽던 나와, 세상에 던져서 고된 삶을 살아나가는 그림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문지기는 그림자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했지만 결국 그림자의 삶 또한 우리게 필요한 것,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들이었다(사랑, 슬픔, 망설임 같은 감정).

누군가는 억지로 이 둘을 구분 짓지만 우리는 살아가며 알게 된다. 도서관에서 꿈을 읽는 나도,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나도 결국 나로 귀결되는 하나의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이 둘을 갈라 놓는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벽은 상대에 따라 형상을 바꾸어 나간다. 마치 생명체처럼. 이제 하루키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림자인가? 꿈 읽는 소년인가? 당신의 벽은 어떠한 모양인가?


"글쎄요. 어느 쪽이건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나 자신이 본체 건 그림자 건. 어느 쪽이 됐건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내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가 곧 나인 거죠.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거예요"(p.754)


나는 지금도 내가 왜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명징하게 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것도 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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