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짱고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고아빠 Feb 27. 2024

그렇게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지를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 중>


2008년인지 9년인지 아무튼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아니 정확히 뭘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결정해야 할 시기였다. 학부 말년 수업은 없고 공강은 많은데 할 일은 없다. 누구는 토익을 친다 하고 누구는 면접을 보러 다닌다고 하는데 나는 여즉 대학원을 갈지 이대로 취업을 할지 결정도 못하고 도서관에서 애꿎은 볼펜만 굴리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이 노래, 장기하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곡 <싸구려 커피>가 들렸다. 때는 자판기에서 막 뽑은 150원짜리 커피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가던 그야말로 텁텁한 찰나이기도 했다. 캑. 뜨거운 커피에 사래가 걸려버린 나는 한참이나 복도로 뛰어나와 헛기침을 했다. 간신히 진정시키고 돌아와 도서관 PC 실에서 이 놀라운 곡을 찾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울고 싶은데 그러면 안될 것 같고 마음이 답답한데 뻥 뚫린 것 같고 하여튼 괴랄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음악 잘 모르지만 이런 게 음악의 힘이구나 싶은 뭐 그런 경험. 이 사람 내 인생을 어딘가에서 훔쳐보고 있나 싶은 그런 경험이었다.


-

글로 써놓고 보니 참 당연한 이야기다. 하나 마나 할 정도다. 그런데 이걸 인정하는 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한 건 내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써왔고, 또 그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내 삶에 이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골칫거리로 삼아 씨름하게 되는 문제들 중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거의 모든 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p.11)


철학자. 함부로 이런 이름을 내가 붙이는 게 온당할지 모르겠지만 장기하는 철학자다. 이는 비단 그의 책이 아니라 그가 세상에 내어놓은 노래만 확인해도 그렇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고,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하는 것에 왜라고 질문한다. 거기 더해 그는 묻는다. 왜 우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지나치게 신경 쓰고 또 그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걸까?

사실 우리 주변의 꽤 많은 선택들이 그렇다. 내가 점심에 햄버거를 먹던, 컵라면을 먹든 상관없다. 커피로 아아를 마시던 뜨아를 마시던 그것도 그렇다. 오늘 저녁 친구들 술자리에 가건 말건 사실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제 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능 한 번이, 어느 회사에 취업하고 말고 가 우리 인생을 그렇게 좌지우지 하진 않는다. 사귀는 친구도, 어른들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던 수많은 것들이 쌓여 내 인생의 일부가 된 건 맞지만 사실 내가 상관없다 치면 상관없었을 것들이 꽤 많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가지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미워하고, 아둥바둥하며 그렇게 살았을까?


-

나는 밴드를 했던 것이 아니다. 밴드를 믿었다. 밴드라는 것이 가진 특별한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신을 믿었다. 대학 초년생 때에는 이런저런 철학 사상을 믿었다.

그 후에는 음악을 믿었다. 그중에서도 밴드, 밴드 음악을 믿었다. 아마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늘 뭔가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무언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것에 연연하기도 하지 만, 종교처럼 믿지는 않는다. 밴드는 내가 가장 최근까지 믿었던 무언가다. 어쩌면 내가 오늘 자유로 위에서 느낀 것은 내 인생에서 믿음의 시절이 지나갔다는 데서 오는 서글픔이었는지도 모른다.

(p.106)


그의 상관없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문득 인생에서 믿음의 시절이 지나갔다는 이야기에는 그만 좀 아득해졌다. 나는 어떤가? 말로는 어떤 가치 같은 것들을 믿는다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 또한 믿는 거라곤 내일 해가 뜨고, 1 더하기 1은 2가 된다 같은 것들을 제외하곤 특별한 믿음 없이 오늘을 살아가진 않았나. 물론 이게 나쁘거나 한건 아닌데 괜히 마음이 콕 찔렸다. 이미 믿음의 시기를 지나버렸음에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은, 이미 나는 크게 바뀌었음에도 예전의 나를 생각하며 기대하며 그렇게 밍기적 거리고만 있는 지금의 나는.


사실 뒤로 갈수록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이 들어 중간에 접을까 하다 끝까지 읽었다. 이건 같은 나이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이기도 하다. 아 예전에 마흔을 앞둔 장기하의 이야기. 마흔에 끌려가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들어가겠다는 이야기도 마흔에 접어드는 내게 임팩트 있는 이야기였다. 뭐랄까. 계속 옆에 두고 듣고 싶어지는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