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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r 03. 2024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하루키 저

달리기에 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1학년 첫 번째 운동회, 나는 내가 달리기를 못하는지 몰랐다. 의기 양양하게 출발선에 섰고 탕 하는 신호음과 함께 호기롭게 튀어나갔다. 아, 정확히는 그런 줄 알았다. 탕 하는 소리가 났고 다들 저만치 앞서가는데 그래서 두발을 열심히 움직이는데도 간격이 좁혀지기는 커녕 그대로 꼴찌가 되어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선생님은 1,2,3등의 손목에 등수를 표시하는 도장을 찍어주었는데, 눈치 없는 내 친구들은 자꾸 내 손목을 보려 했고 싸웠는지 울었는지 하여튼. 그 이후로는 운동회마다 달리기를 피하려 다리를 전다거나, 머리나 배가 아파 못 뛴다거나 하는 짓거리를 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때부터 난 달리기가 싫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화가 잔뜩 난 체육 선생은 우리 반 전체에게 운동장 열 바퀴의 벌을 내렸다. 꽤 많은 녀석들이 중간에 탈락 혹은 빠져나갔다. 왜 그런 오기가 생겼는지 모르겠으나, 갑자기 나는 다 뛰어야겠다고 결정했고 그렇게 나는 주어진 열 바퀴를 다 채웠다. 마지막 바퀴는 모두가 스탠드에 있는데 나만 트랙 위에 있었다. 내가 결승선에 들어오자 마지 수업종이 울렸고 체육 선생은 내게 양호실에 가보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이날 그 이를 악물던 그 찰나의 순간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억은 삶의 굽이굽이 때마다 가끔 떠오르곤 하는데 '빠르지는 않아도 오래는 달릴 수 있는' 나도 몰랐던 신기한 나를 발견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것도 사실 이 기억 때문이었다. 서른 넘어 어떤 운동이든 해야지 살 것 같던 어느 날 문득. 마라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리는 못 뛰어도 오래는 뛸 수 있다면 어차피 1,2,3등을 할 게 아니라면 나도 남들처럼 마라톤 대회는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설사 못하더라도 운동화 한 켤레로 할 수 있는 운동이면 실패해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밤마다 집 앞 공원을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 2km를 뛰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는데 6개월 후, 나는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걷지만 말자.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대회에서의 10km를 완주했고, 지금까지 매년 2번씩은 10km 혹은 하프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다.


소설가이자 마라토너로 유명한 하루키는 묘비명에 이렇게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루키의 달리기에 대한 글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집어 들었다. 책은 이미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책이다. 2006~7년 사이에 쓰여진 그가 말하는 달리기, 달리며 느낀 것들, 달리는 이유에 관한 하루키의 회고록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리기는 같은 달리기여서 괜히 마음이 쿵쿵거렸다.(사실 러닝화를 새로 살까 하다 집에 있는 그 녀석이 가까스로 생각이 났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내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그렇다, 아마도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전자책)


겨우내 춥다고 움츠려만 있다가 그의 책을 읽고 오랜만에 달렸다. 3km 지점을 넘어서니 숨이 차고 다리가 풀려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조금 더 먼 거리 그 다음 날은 조금 더 먼 거리로 가려고 한다. 사실 하루에 5km를 뛰든 10km를 뛰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의 러닝에 납득하는 것. 내가 납득하는 어딘가의 장소에서 적어도 걷지는 않았던 나를 발견하는 것. 3월이다. 깊은 숨을 들이키고 다시 운동화 끈을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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