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 마치다 소노코 저
한국에서 <불편한 편의점>이 편의점 전성시대를 열었다면 일본에서는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이지 않을까. 처음에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상징처럼 시작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이 이제는 사람들이 모이는 유일한 공간(대형마트는 너무 바쁘니)이 되는 모양새다. 소주를 사러 나온 노인들, 학원 가기 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 그리고 각종 소소한 물품들을 구매하러 나온 엄마들까지. 시대는 조금 바뀌었을지언정 언젠가 골목에 있던 커다란 평상. 고추도 말리고, 아줌마들도 나와 있고, 아이들도 모여앉아 공기하고 고무줄넘기하던 곳.
책의 무대는 바닷가 마을 모지항에 있는 편의점 텐더니스 고가네무라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 있는 GS나 CU쯤 되려나. 편의점의 내부엔 취식 공간이 따로 있는데 시골이다 보니 그곳에서 식사하는 노인들이 많다.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필요한 마시는 수액, 응급 용품들도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이 편의점의 최대 강점, 말도 안 되게 잘생긴 꽃미남 점장이 이 편의점을 지키고 있고 점장이 근무하는 시간이면 편의점은 연예인이 온 것 마냥 북적대는데 심지어 어마어마한 매력의 소유자인지라 점장과 한 번이라도 말을 섞게 되면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거기에 ‘무엇이든 맨’ 츤데레 점장의 형과 각양각색의 직원들까지. 여느 하나 쉽게 넘기기 힘든 사랑스러운 이들이 지키고 있는 이 예쁜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이 작고 소소하고 예쁜 이야기들 사이로 조금씩 성장하는 이들을 보며 괜스레 우리도 조금씩 마음에 힘을 얻는다.
일본 영화나 소설답게,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대단한 사건이나 감정의 굴곡, 이슈가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소소한 고민을 안고 편의점을 찾고 이들과 부딪히며 그렇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불편한 편의점>이 서울 시내 한귀퉁이서 곳곳의 사회 문제에 찌들린 이들이 회복되는 이야기였다면,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은 탁 트인 바다와 시골마을 부두를 거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며 멍 때리게 되는,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어본 듯한 우리네 사는 이야기다. 초 단위로 영상을 쪼개는 도파민에 중독된 이들이라면 읽는 게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으나, 머지않아 피어날 꽃밭을 보며 한가로운 카페에서 딩굴거리며 읽기는 이만한 책도 없을 것 같다. 사실 이렇게 두껍고 길고 따뜻한 이야기는 누구를 막론하고 좀 읽으면 좋겠다.
문득, 언젠가 편의점 야간 알바시절,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가장 큰 인형을 가격을 묻지도 않고 사 가던 남자(나중에 물어보니 무슨 기념일을 까먹었다고..), 새벽녘 실연의 아픔을 내게 털어놓던 그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형이 기억난다. 그분들 지금 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