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짱고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고아빠 Apr 24. 2024

사랑이 필요한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어느 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 박은지

책 고르는 운이 좋은 날이다. 우연찮게 들어간 전자도서관에서 고른 두 개의 책이 이렇게 대백인 경우는 잘 없는데 이상하게 오늘이 그렇다. 그랬다. 고양이와 책을 사랑한다면 좋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저자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길고양이와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때론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그 고양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 모든 상황 속으로 가만히 걸어들어가 그 한 장의 사진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 조곤조곤 알려준다. 무엇이 행복인지, 어떤 게 외로움인지 그렇게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삶의 지혜에 괜히 눈물이 났다.

고양이를 키우고 매일 고양이를 바라보는 처지에 훅 들어온 고양이 이야기가, 그 고양이가 매일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에 괜히 마음이 시큰했다. 이 사람 글 정말 잘 쓴다.


조금 T 같은 소리를 하자면 우리가 너무 함부로 동물을 의인화하여 고양이의 의도와 관계없이 우리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들에 대해 누군가는 지적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 마음까지도 헤아리고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풀어낸다.


고양이. 언젠가부터 내게 고양이는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마법의 단어가 되었다. 에피소드에도 나온 누군가처럼 나 역시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 아이가 무얼 훔쳤는지도 모르면서 나도 함부로 그네를 도둑고양이라고 불렀고 까만 밤 담장 위에서 째려보듯 반짝이는 눈을 멀리했다.

우연한 기회에 고양이를 안게 되고, 그 작은 생명이 내 품에서 골골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알았다.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각 존재들 간에 필요한 거리를 안다. 너와 나 사이의 적당한 거리. 그 거리가 피부가 닿을 정도로 가까울 때도 있고, 때론 침대 아래 나 장롱 위처럼 손에 닿지 않는 거리일 때도 있다. 어느 날 문득 좀처럼 불러도 오지 않는 녀석을 보며 때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고,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한 나를 떠올렸다.


‘조금만 일찍 내 삶에 들어오지.. ’


이제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기

어디론가 사라진 고양이를 떠올리며 나도 내 주변에 쌓아올린 울타리를 슬그머니 어루만져 보았다.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던 그 고양이의 성향이 천성인지, 그간 좋은 사람을 만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에서 살아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열쇠조차 없이 단단하게 걸어 잠근 울타리는 좋은 관계의 가능성마저 차단하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무나 내 울타리 안에 들여놓고 나면, 그들이 어지르고 상처 입힌 정원을 치우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모두에게 마음을 꽁꽁 닫는 것은 외롭지만,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그 이야기를 미처 해주지 못한 게, 나는 못내 마음에 걸렸다.

(전자책)


당신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릴 때 고양이가 많은 동네에서 살았고 그들을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며 자랐다. 무엇을 훔치는지, 정말로 훔치는지는 잘 몰랐다. 당신은 검은 비닐봉투 근처를 서성이거나 밤길에 날카로운 눈으로 당신의 걸음을 살피는 고양이가 그저 쭉 싫었던 것 같다.

그러나 좋아하는 마음이란 제멋대로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고 자라나고는 해서, 당신은 평생 좋아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것들을 종종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귀찮게 여겼던 여행을 자주 떠나고, 성가시던 어린아이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질색하던 브로콜리와 당근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어느 날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전자책)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아름다운 오늘을 그리는 당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