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 송경화 저
사실 이 책보다 이 책의 속편 격인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 민트돔 아래에서>를 먼저 읽었다. 2편을 꽤 즐겁게 읽어서 언젠가 꼭 1편을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2편이 국회로 간 송가을 기자의 활극담이었다면 1편은 그가 기자의 꽃이라는 정치부에 가기 전에 그러니까 꽃병 아리 신입기자 시절 처음으로 경찰, 법조, 탐사보도팀을 거치며 송가을 기자가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성장담이자, 사건사고를 제3자에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어떻게 고분분투하는지 들려주는 논픽션이다.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는 의미를 뒤로하고서라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그렇게 마냥 즐겁기만 하다만 좋았겠지만 문제는 16개의 에피소드의 각각의 사건들은 언젠가 우리가 한번은 TV 뉴스에서 들어봄직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저축은행, 스폰서 검사, 촉법소년 같은 크고 작은 문제들부터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었던 국가보안법의 이름 아래 자행된 불법감금, 고문, 공안검사가 촉발한 재심,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 우리나라와 중국에 흩어져있는 탈북인들의 인권 문제 나아가 세월호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이슈까지 송가을 기자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자리에서 우리가 채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들려준다.
우리는 어떤 사건사고를 접할 때 크게는 진보와 보수, 그리고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어떤 프레임을 통해 보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예전에도 조중동 대 한경대문으로 언론의 시선은 갈라져 있었지만 요즘은 같은 SNS 시대와 비교하자면 귀여운 수준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알고리즘은 취향의 극대화라는 명목 아래 반대쪽의 이야기는 철저히 배제한 채 내 편의 이야기만 타임라인에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편만 가득한 세상에서는 90%의 팩트에서 10% 정도의 왜곡이 일어나도 다들 눈을 감는다. 이 왜곡은 여러 타임라인을 거치며 눈덩이처럼 커지며 내 편의 옳음을 극대화시키는 음모론으로 성장한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이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통용되는 이야기들을 진리인 양 공론의 장으로 가져오고, 더 이상 걷잡을 수 없게 된 양 쪽의 이야기는 온오프라인에서 치열하게 맞붙는다. 그리고 매주 광화문광장의 주인이 바뀌는,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분열이 극심한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책에 나오는 모든 이슈는 이 프레임 전쟁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슈들이다. 그리고 초짜기자이자 열혈기자 송가을은 이 사건사고를 쫓으며 이 이슈들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하지만 사건마다 계속해서 그의 객관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한 가지 시선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결국 기사란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그가 쓰는 기사 한 줄에 억울한 것이 녹아내리는 이들도,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해야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기사를 청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최대한 기자의 눈을 피해 살아가기도 한다.
송가을 기자는 이슈 뒤에 숨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며 우리에게 사람을 보는 눈과 더불어 삶의 태도를 묻는다. 지금도 뉴스에서 쏟아지는 각종 이슈에 사라져 버린 사람의 자리에 대해 묻는다.
언젠가부터 정치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는 걸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다. 정치색이라는 게 드러나며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불필요한 오해들을 받는 게 싫어서이다. 이십 대 때부터 징글징글하게 접한 대립의 정치가 이제는 신물이 나서라는 이유도 있다. 요즘은 가끔 너무 세상에 무지하다며 핀잔을 주는 이들도 있긴 하나, 어느 편에 속해 대립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자리에 사람이 아닌 다른 것이 있다면 작은 목소리라도 더하려고 하는 편이다. 송가을 기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어느 쪽에 서기 싫다며 멀리했던 각종 이슈 속의 사람의 이야기가 보였다. 그리고 꽤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