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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책방

동화 같은 독일 여행지를 걷고 싶은 날

독일 소도시 여행 | 유상현 저

by 짱고아빠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일에 가고 싶었다. 아니 독일에 가 있었다. 단순한 유럽 여행지가 아니라, 정말 그곳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신혼여행의 마지막 코스가 하이델베르크였다. 사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떠난 도시, 그런데 그 도시에서 나는 진짜 유럽, 진짜 독일을 만났다. 도시 중심에 흐르는 강,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철학자의 길. 마주 오는 사람 없이 한참을 걸었다. 오래된 길과 낡은 담장 사이로 바람이 스치고, 어딘가에서는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 달쯤 살아보고 싶다. 매일 이 길을 걷고만 싶다. 그 추억은 꽤 오래 남았다.


『독일 소도시 여행』은 그런 도시들에 관한 책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작지만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는 공간들. ‘소도시’라고 부르지만, 실은 한 시대의 중심이었거나 작고 단단한 왕국 혹은 한 가문의 전부였던 곳들이다.

이런 도시는 단순히 예쁜 것을 넘어, 오래된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집마다 창문이 다르고, 담벼락엔 계절이 붙어 있다. 영화 속에나 있던 골목을 계속 걷다 보면, 이 도시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놓지 않으려는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잡았던 부분이다. 어떤 도시들은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두 무너졌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곳들이었다. 패망 이후 독일은 그 폐허 위에 새로운 것을 세우기보다는, 사라졌던 것들을 다시 불러오는 쪽을 택했다. 그들의 전쟁을 대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부끄러운 새 무기가 아니라 찬란했던 시절의 전통을 다시 붙잡았다.


그 덕분에 지금의 도시들은 단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함께 사는 공간이 되었다. 오랜 건물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몇백 년 전의 길 위에서 여행자가 과거의 철학자에게 길을 묻는다. 그렇게 조용히 복원된 도시들은 오늘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이 대화는 오늘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저자는 그렇게 이 도시들을 거닌다. 풍경이 아닌 관계로, 유적이 아닌 사람으로. 대단한 명소가 없어도, 천천히 걷고 머무르면 그 도시가 이윽고 말을 걸어온다. 그렇게 독일은 거기에 있었다.


책에는 35개의 도시가 나온다. 이름을 알고 있었던 곳도 있고, 처음 듣는 도시들도 있었다. 대도시와 붙어 있는 이름 없는 마을이 그렇게 오래된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게 조금 놀랍기도 했다.


나는 늘 이런 여행을 꿈꾼다. 뭔가를 열심히 보거나 찍기보다, 그냥 오래 걸을 수 있는 곳. 특별한 목적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장소. 책을 덮고 나서 생각했다. 하이델베르크에 다시 가면, 그 길을 또 걷고 싶다고. 그리고 언젠간 이 도시 중 한 곳에서, 정말 한 달쯤 살아보겠노라고.


우연히 들른 서점의 서가에 서서 읽다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여행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이 책도 그랬다. 아무런 계획도 없지만, 마음은 벌써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골목 어귀에 가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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