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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가족을 어떻게 선택하는가

알피는 가족이 필요해 | 레이첼 웰스 저

by 짱고아빠

짱고를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작은 유리 상자 안 3개월이 조금 넘은 고양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선 나를 게슴츠레 보고 있었다. 처음 고양이를 분양받는 거라 이것저것 물어대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녀석은 문득 결정한 듯 네 발로 힘차게 일어섰다. 마치 이곳에서의 삶을 정리하려는 듯 온몸으로 기지개를 켜고는 힘차게 온몸을 흔들어 그곳의 모든 것을 털어냈다. 그리고 그 작은 상자 안에서 나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와서는 그 작은 발을 유리벽에 척 갖다 댔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날은 내가 택한 게 아니라 택함을 당한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고 녀석은 아직도 내 무릎 위에서 골골대고 있다.


혼자 살 때 때로 몸이 많이 아팠다. 고열로 혼자 낑낑대던 시절에 어제 먹었던 감기약 병을 물어와준 짱고를 아직 잊지 못한다. 아주 걱정스러워 죽겠다는 그 눈 빛도. 짱고가 범백에 걸려 하루하루 힘들어하던 시절에 나는 매일같이 동물 병원에 찾아가 이 작은 생명을 안고 울었다. 제발 살자. 우리 같이 살자. 10년이 넘는 세월을 켜켜이 쌓아온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뭔가를 건네고 있었다. 이 책 <알피는 가족이 필요해>를 읽으며 자꾸만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소설은 알피라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가족 이야기다. 보호자를 잃고 길에 남겨진 고양이 알피는 새로운 가족을 찾아 ‘에드거 로드’에 들어선다. 의도치는 않았을지언정 더 이상 버림받을 자신이 없던 알피는 이제 최소 두 곳 이상의 집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하고 보호자를 찾아 나선다. 사랑에 상처 입은 사람, 외로움 속에 있는 남자, 육아에 지친 엄마, 새로운 땅에 적응하려 애쓰는 이민자 가족.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고 아는지 모르는지 알피는 그 틈으로 아주 다정하게 들어간다. 섬세한 시선은 사람의 아픔을 쉬 알아차린다. 무엇보다도 고양이는 그렇게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있어주는 방식으로 저 나름의 위로를 인간에게 건넨다.


"그들 모두에게는 내 사랑과 다정함이 필요했고, 내 지지와 애정이 필요했다"는 알피의 이야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적였다. 고양이의 사랑은 언제나 느슨하고 생각보다 깊다. 자신만의 속도로 다가오지만 한 번 마음을 주면 결코 쉽게 떠나지 않는다. 가끔 나를 보고 ‘커다란 고양이 같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를 좇기보단 조금 멀찍이 바라보다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슬며시 다가가 손을 건네는 방식.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제는 더 자연스럽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이런 나라면 좀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소설은 고양이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우리게 묻는다. 혈연을 넘어서 서로를 보듬어 주는 관계, 다정함을 매일같이 연습하는 사람들 그리고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존재. 그것이 가족이라면 알피는 아니 고양이는 어쩌면 누구보다 먼저 가족의 정의에 도달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데 짱고가 저 거실 구석에서 그때와 같은 기지개를 켜고는 터벅터벅 걸어 내 무릎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한참을 그릉대며 무릎에서 잠들어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오래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오래오래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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