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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바뀌면 삶도 달라진다

공간인간 | 유현준 저

by 짱고아빠

유현준 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낯설지 않다.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읽는 느낌이다. 오해는 말자. 지루한 동어반복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오히려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게다가 그가 다룬 주제들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내가 건축에 대해 뭘 얼마나 알겠는가.) 그는 언제나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건축사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재미있다. 누군가 이런 걸 ‘시선의 전환’이라고 했는데, 아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현준 교수가 알려준 이 작은 시선의 전환이 내 일상의 배치와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꾼 적이 있다. "사람은 방이 아니라 집에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그길로 원룸을 떠나 거실과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을 넘어 얼마나 삶을 확장시킬 수 있는지 실제로 경험했다. 나는 주말에 혼자 카페에 가지 않았고, 요리를 시작했다.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기 시작했고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락함을 오롯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여하튼 그의 신간 <공간 인간>은 언제나 그랬듯 건축 해설서는 아니다. 그는 시대를 통과한 건축물들을 따라가며 공간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켰고 사회를 만들어냈는지를 들려준다. 마치 한 층 한 층 올라가듯 구성된 17개의 챕터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한 1층부터 스마트 시티라는 이름의 17층까지 우리 삶의 기반이 되어온 공간의 변천사를 차근히 보여준다. 변하지 않는 그의 주제, 공간이 곧 사회의 구조를 바꾸고, 관계를 규정하며, 문명의 방향을 결정지어 왔다는 이야기다.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체험의 밀도'라는 개념이었다. 인간은 꾸준히 자신이 사용하는 공간을 확장해 왔다. 걷고, 말을 타고, 기차와 자동차를 타며 점점 더 멀고 빠르게 이동했다. 동시에 도시화를 진행시키며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공간은 팽창되고 건축의 발달로 공간은 고밀화되었다. 얼핏 보면 상반된 흐름이지만 그는 이를 ‘체험의 밀도’라는 개념 아래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지금 어느 인류보다 단위 시간당 더 많은 체험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그 진화의 중심엔 언제나 건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부연하며 그는 인류가 겪은 네 번의 ‘공간 혁명’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바퀴, 두 번째는 삼각돛, 세 번째는 엘리베이터 그리고 마지막은 인터넷이다. 이 네 가지는 공간의 개념을 확장시키며 인류를 더 빠르고 넓게 연결하는 데 기여했는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인터넷은 앞의 셋과 차원이 다른 연결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이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새로운 영역에서 또 다른 ‘공간 혁명’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기술이 만들어낸 이 새로운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그의 질문은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이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갈 것인가.


“요소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공간은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한다”


사무실의 책상 배치 하나가 사람들의 소통 방식을 바꾸고, 아파트 단지의 구조가 이웃과의 거리를 결정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관계를 구성하고 감정을 조율하며 삶의 리듬을 형성하는 구조물이라는 거다. 이 책은 그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왔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밀도 있게 들려준다.


서두에서 그의 이야기는 늘 반복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책의 말미에서 그는 자신이 설계하고 방송하고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화목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는 참 꾸준하게 말한다. 건축은 그 자체로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결국 사람 사이의 다정한 거리를 고민하는 일이라고.

유현준 교수의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추천. 혹 한 권이라도 읽었거나 <셜록 현준>의 구독자라면 반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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