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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책방

100년 전 유럽인의 눈으로 본 모로코

모로코에서 | 이디스 워튼

by 짱고아빠

모로코는 늘 가보고 싶은 나라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유럽의 흔적이 짙고, 전통과 현대가 오묘하게 공존하는 나라. 이디스 워튼의 <모로코에서>는 그런 모로코를 20세기 초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땐 단순한 여행기쯤으로 여겼지만 읽을수록 이 책은 당대 서구 지식인이 낯선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한 증거이자 풍경에 깃든 문화적 맥락을 조심스럽게 더듬는 사유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국화와 칼>은 미국인이 바라본 동양을 오리엔탈리즘이라 이야기하는 비판적 시각도 거셌는데 이 책을 모로코 혹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보면 어떨지 좀 궁금했다)


워튼은 단지 ‘무슬림 세계를 구경한’ 여행자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보는 도시들, 그 도시를 채우는 냄새, 빛, 소리, 그리고 계급과 종교가 만들어낸 질서까지 함께 기록한다. 그녀의 문장 중에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건 이 구절이었다.


"모로코의 도시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중세의 숨결과 현대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라바트의 하얀 벽과 페즈의 미로 같은 골목, 마라케시의 붉은 성벽. 어떤 곳일까? 단지 사진으로 남기고 마는 풍경이 아니라 걷고 바라보고 오래도록 서 시간의 밀도를 느낄 수 있는 곳일 것 같은데 어떤 곳일까.


책은 동시에 모로코 사회의 구조, 여성의 삶, 종교와 식민 행정의 관계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워튼은 프랑스 식민지 행정이 이 땅에 어떤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를 서늘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당대 서구적 시선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낯선 문화에 대한 경외와 경계 사이, 어떻게 보면 그녀의 문장은 어딘가 긴장되어 있고 때론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모로코가 이렇더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구 지식인이 모로코를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워튼은 어려운 이야기로만 지면을 쓰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녀의 여행기고 그 역시 결국 남는 건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여행이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낯선 세계와 나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일임을 깨달았다는 그의 이야기는 아마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아직도 모로코의 전통과 변화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누군가의 삶은 진행중이며 그를 목도함으로 낯선 세계에 떨어진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보면 우리는 어떤 여행에서도 결국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것도 고전인데, 잘 알려지지는 않은 책이다.

쉽지는 않지만 천천히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남고 꽤 읽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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