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짱고책방

우리 안의 무관심을 말하다

변신 | 프란츠 카프카

by 짱고아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가 만약 바퀴벌레가 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거야?"


몇년전 SNS를 강타했던 그 질문을 끌어낸 소설이다. 소설은 이 가정을 만약에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만든다. 부모와 형제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팔도 다리도 내가 아는 그것이 아니고 사람들은 날 보고 놀라거나 피하거나 끝내 외면한다(분명 누군가는 바퀴벌레 약을 들고 올거다). 그런데 나는 그 상황 속에서도 계속 걱정한다. 출근 시간을, 가족의 식사와 생계를, 그들의 눈치를. 그런 사람이 바로 <변신> 속의 그레고리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그레고리가 벌레가 되어버린 어느 날 아침부터 시작된다. 당혹스러운 사건이지만 가족은 이를 현실로 받아들인다(왜??!!). 뿐만 아니라 회사도 그 사실을 알고(경찰에 신고하는게 아니라) 그냥 손절하고 세상은 사람이 바퀴벌레가 된 이 희대의 사건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간다. 그레고리는 여전히 생각하고 기억하며 말하려 애쓰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건 마치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듣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가족은 처음엔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곧 그를 방에 가둔채 창피하다는 듯 그의 존재를 감춘다. 그레고리를 위한 듯 치워진 가구는 사실 그레고리를 더욱 사람 아닌 존재로 몰아넣는다. 불편한 사람, 아픈 사람의 옆에 있어주거나 함께 울어주기보다는 그를 치워버리는 방식으로 처리하려는 사람들.

우리는 그 장면이 낯설지 않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가장 쉬운 태도일지 모르기에.


가장 무서웠던 건 그레고리가 그렇게 벌레로 살아가는 과정보다 그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달라졌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누군가의 무너짐, 불안, 아픔은 때때로 "저 사람 왜 저래?"라는 말로 정리된다.

그레고리의 방에도 그런 말들이 가득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다가가지 않는 것. 아프니까, 함께하지 않는 것. 그렇게 그레고리는 비로소 가족의 구성원에서 완전히 탈락한다. 결국 그는 조용히 사라지고 가족은 안도의 숨을 쉰다. 그를 향한 진심 어린 애도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카프카는 1916년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10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인데도 이상하리만치 <변신>은 지금도 모두를 아프게 떠올리게 한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약해졌다는 이유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곁에서 지워내는 방식. 그건 타인의 고통에 너무 익숙해진 사람들의 무감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폭력이다.


그렇게 <변신>은 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끝난다. 지금, 우리 옆에 있는 그레고리를 떠올릴 수 있는가?

아니 어쩌면, 그건 나일 수도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0년 전 유럽인의 눈으로 본 모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