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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책방

아이를 어쩌자고요? 미쳤어요?

겸손한 제안 | 조나단 스위프

by 짱고아빠

내가 뭘 읽은 거지? 한참을 다시 읽고 다시 읽고 했다. 눈에 헛게 보이나? 연휴가 너무 길었나? 내가 제대로 된 책을 읽은 게 맞나? 찾아보니 조나단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을 처음 읽는 독자는 누구나 같은 과정을 겪는다. 당혹 → 분노 → 이해 → 숙연함. 나 역시 그랬다. 한두 문장이 아니라 글 전체가 ‘미쳤다’고 생각했고, 진짜로 아이들을 잡아먹자는 얘긴가 몇 번을 다시 읽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이 끔찍한 제안은 현실보다 결코 더 잔혹하지 않다는 것을.


18세기 초 아일랜드. 영국의 지배 아래 극심한 착취와 빈곤, 무책임한 상류층의 기득권 지키기가 만연하던 시기. 스위프트는 진짜 대책 하나 내놓지 못하는 위정자들을 향해 정면으로 날을 겨눈다. 차라리 ‘가난한 아이들을 식용으로 팔아 부를 창출하자’는 풍자적 제안을 통해 지금 당신들이 내놓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보다는 차라리 광기가 낫지 않냐고 되묻는 것이다.


그는 이 냉소적인 제안서를 쓰면서 그 안에 숫자와 수익 구조까지 구체적으로 설계해놓는다. 그런데 그게 더 무섭다. 그 냉정한 계획서가 사실은 우리가 지금도 보지 못한 채 지나치고 있는 수많은 사회 불평등과 착취의 구조를 닮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아이를 양육하기 보다 밥벌이 도구로 사용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 말도 안 되는 사회구조 위에서 돈을 번다.


스위프트는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에 '분노하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너무나 정중하고 합리적인 척하며 글을 써 내려간다. 제목은 겸손하고 문장은 냉정하다. 그러나 그 속엔 참을 수 없는 울분과 시대를 향한 통렬한 조롱이 담겨 있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을 약자들의 절규.


<겸손한 제안>은 짧은 글인데 꽤 오래도록 남는다. 이토록 끔찍한 상상이 누군가의 현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18세기의 아일랜드와 21세기의 한국은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우리는 그 고통을 마주 보고 있는가? 누군가의 조소처럼 빈곤 포르노 같은 소리를 되뇌며 외면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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