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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책방

문득 사람이 버거운 날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 태수

by 짱고아빠


요즘따라 사람을 좋아하기가 어렵다. 가까운 사이임에도 미묘하게 위아래를 따지고, 날씨는 이렇게나 화창한데도 나쁜 점부터 찾아내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만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들’ 속에서 튀지 않게 조용히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하는 때다. 장태수 작가의 책은 그런 나에게 사람에게 덜 기대하는 법을 알려준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넌 그렇구나" 정도의 건조한 존중은 보낼 수 있는 사람.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게 어른의 미덕이 아닐까 싶어진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을 미워하는 데도 체력이 든다고. 감정도, 시간도, 심지어 돈도 들어간다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언젠가 있었던 다툼이 떠올랐다. 도무지 납득되지 않던 태도에 밤새 분노하며 잠을 설쳤던 날들. 그건 결국, ‘이해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더라. 우리는 대화보다 증명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증명되지 않으면 무시당한 듯 마음이 무너진다.

그러니 너무 날이 섰다면 오히려 서로를 좀 더 내버려두는 게 배려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는 '따뜻한 무관심'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 유난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무례한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솔직하다고 말한다는 문장을 읽고선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누군가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는 사람들, 내 앞에서는 '직설'이라며 감정을 툭툭 내뱉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들키기 싫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우린 흔들린다. 참지 말고 맞서야 할지, 그냥 피해야 할지. 책은 말한다. 도망치는 것도 답이라고. 그래 모든 싸움이 반드시 맞서야만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등을 돌리는 용기도 어른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꾸준함'에 대한 정의였다. "미련해서 꾸준한 게 아니라 흔들리지 않아서 꾸준할 수 있다"는 말.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애쓰는 태도. 누군가는 그 단단함을 미련함으로 오해하지만, 진짜 단단한 사람은 드러내지 않아도 버티는 법을 안다.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계속 한 길로 걷는 사람. 맞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은 모두가 다른 걸 보며 산다. 각자의 OTT, 각자의 플레이리스트에 빠져들며 외로움을 해소한다. 꼰대의 한 사람으로 이런 모습이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다 이윽고 이들과 대화하며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말이 새삼 실감되기도 한다. 낯선 경험, 다른 경험을 인정하는 것. 나와 같지 않아도 존중하는 것. 그것이 모두가 각자의 모습으로 나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직도 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종종 불안하고 흔들린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듯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도 그런 나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되려는 변덕 많은 어른이 아직은 매력 있다. 나를 정의하지 않기에 나는 여전히 어떤 가능성 있는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어른의 행복은 요란하지 않다. 그것은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도 내 마음을 지키는 일, 이해받지 못해도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 누군가의 무례에 대꾸하지 않고도 나의 품격을 지켜내는 일이다.

조용한 사람, 그러나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내게 가르쳐 준 어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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