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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책방

내 안의 어린아이를 보듬는 법

어른이 된다는 건 | 요시모토 바나나 저

by 짱고아빠

고등학생 때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처음 만났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냥 '이상하게 따뜻한 일본 작가'라고만 생각했고 그 문체가 좋아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도서관에서 모조리 뽑아 읽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조금 더 '어른'이라는 이름에 가까워졌을 무렵 다시 만난 책이 바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책은 여덟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친구란 뭘까? 공부는 꼭 해야 할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질문들은 단순하고 어쩌면 어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대답, 작가가 대답하는 삶의 농도는 꽤 짙다. 누군가는 이미 지나쳐버렸고, 누군가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 바나나는 이 질문들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그러고 보니 나 이런 거 정말 좋아한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시간, 느꼈던 감정, 마주했던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떠올리며 자신만의 언어로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가볍지만 깊고, 따뜻하지만 날카롭다.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당신 자신이 되세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조언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가리키는 나침반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엉엉 우는 어린이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은 지금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유효한 문장이다.

애써 없는 척하지 말고, 그 아이를 살갑게 보듬어야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 내 안의 오랜 어린아이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엎고,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 자신이 되라는 말이 지금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먼 앞날에 여러분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첫 번째 이야기가 떠올라 마음이 좋아졌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늘 무언가 당장 변화를 가져올 법한 것들을 찾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많지 않다. 아니 없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 삶은 늘 천천히 움직인다. 당장 무언가를 바꾸게 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문득 생각나게 만드는 책. 그리고 이 책을 떠올릴 때마다 오늘의 작은 행동, 삶의 태도 하나를 수정하게 만들 수 있는 책.


돌이켜보면 내가 사랑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늘 그랬다. 삶을 특별한 언어로 설명하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감정의 결을 따라 조용히 걸어가고 그 걸음이 좋아 위로가 되어준 책들이었다.

어른이라는 말에 자꾸만 부담을 느끼는 사람, 인생의 정답보다 내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누군가를 향한 조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속삭이는 이야기처럼 읽히는 책.

이런 책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꺼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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