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향한 사랑은 언제 탐욕이 되는가

탐욕스러운 돌봄 | 신성아 저

by 짱고아빠

아이를 키우며 다시 시작된 질문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상하게도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또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분명 우리가 살 건 세상보다 힘들 텐데 우리는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그 세상에서 우리 어떤 어른으로 기억될까.


이 책 <탐욕스러운 돌봄>을 보면서 그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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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언제 탐욕이 되는가


책은 아이를 키우며 쓴 부모의 에세이다.

그런데 어느 육아 에세이와는 좀 다르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게 되는 곳곳에서 돌봄과 사회의 충돌을 느끼는 부모는 이내 묻는다.


‘내 아이를 향한 사랑은 언제 탐욕이 되는가.’


처음에는 이 질문이 조금 불편했다.

사랑과 탐욕이라는 단어가 같은 문장에 놓여 있는 것 자체가 조금은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부모가 된 나의 마음도 늘 이 경계 위에 있다.

내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고 싶고,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길을 만들어 주고 싶다.


문제는 이 사랑이 어느 순간 ‘내 가족’으로만 향할 때다.

모든 자원을 안쪽으로만 끌어들이는 방식의 돌봄은 결국 사회와 충돌하고 마는데 이 사회와 돌봄의 충돌은 다시 부모의 불안을 키우고 만다.


이 불안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다시 더 많은 불안을 만든다.

이 책은 그 악순환을 꽤 정직하게 드러낸다.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인가요?


수영장.

체육대회.

시험.


육아를 경험했다면 아이와 함께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장면들이다.

그리고 이 순간마다 부모의 머릿속에는 보이지 않는 비교의 회로가 켜진다.

누가 더 잘하는지, 누가 더 앞서가는지, 누가 더 많은 기회를 얻는지.

그리고 이 줄에서 내 아이는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남들보다 앞선 자리에 있는 아이가 자랑스러울 수도 있고,

남들보다 뒤쳐진 자리에 있는 아이가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내 아이의 위치는 아이의 노력이나 부모의 어떠함이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기회와 룰이 이미 기울어진 사회 안에서는 아이의 노력과 별개로 그 위치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도 많다.


조금 슬픈 일이지만 이러한 환경을 배제한

경쟁의 결과들을 아이의 탓으로 돌리게 될 때 부모는 쉽게 아이에게 세상을 오해할 빌미를 제공하고 만다.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일까.


여기서 책의 질문은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내 아이가 살아갈 사회를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는 가로 확장된다.




아주 천천히 쌓아 올리는 세계


결국 "인간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자기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비참함과 직면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이다. 또 "세계를 건설하는 데 자기의 돌을 놓음으로써 이바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일이다" 아주 천천히, 시민의 힘으로만 지어 올리는 사그라다 파밀라아 대성당은 140년이 지나도록 완공되지 않았지만 매 순간 아름답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다 같이 쌓아 올려야 할 신뢰와 권위는 바로 그런 것이다. 이 세계는 그렇게 인간에 의해 완성되어 간다.


꽤 동의하며 책을 읽다 마음에 쿡 박힌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조금 느리고, 조금 더디지만 서로가 돌을 하나씩 놓으며 만들어 가는 세계에만 신뢰와 권위가 생겨난다.

책임을 지고, 부끄러움을 아는 세계에 권위가 존재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로 신뢰, 권위, 사랑, 희망 같은 단어를 아이에게 주입하고 있지만

그러한 세상을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해 아니 보여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부모라면,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면 한 번쯤은 읽어보길 권한다.



* 흥미로웠던 건 2026년에 나온 책임에도 책의 편집과 디자인(특히 폰트)은 묘하게 클래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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