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상점> 변윤하 저
그림자는 나의 분신이다. 그건 내가 어디로 가든 내 발끝 어딘가에 붙어있다. 가끔 그것들이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검고 불편한 것들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건 엄밀히 말하면 사라졌다기보다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집어삼켰다고, 아니 내가 스스로 그림자 안으로 걸어들어갔다고 하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그림자 상점>은 이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다. 여리는 세 개의 그림자를 거느린다. 여리는 그림자가 한 개뿐인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의 아빠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다고. 다만 그 그림자들이 하나처럼 보일 뿐이고, 여리의 그림자들은 조금 더 솔직한 것뿐이라고.
고등학생이었던 여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마침내 죽음에 닿으려는 순간 여리의 발끝에 있던 두 개의 그림자는 여리를 떠난다. 물론 여리는 죽음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리고 2년 뒤 여리는 잃어버린 그림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림자들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달라며 <그림자 상점>에 그림자의 주인이었던 여리가 동행할 것을 요청한다. 결국 그림자 상점에서 여리는 그제서야 그 그림자들이 자신의 깊고 오래된 상처들임을 알게 된다.
잊어버리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기억들이 있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했던 기억,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픈 부끄러운 기억, 가장 믿던 누군가에게 배신당한 기억. 차라리 없는 게 나을듯한 기억을 품고 우리는 꾸역꾸역 이 땅을 살아낸다.
그 기억들은 때론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하고, 억지로 다른 기억으로 덮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것이 내 상처의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내 발끝에 걸려있는 그것들은 언제고 슬금 기어올라와 나를 간지럽히고, 가장 어두운 곳으로 나를 집어삼킨다. 옳다.
이따금씩 그 어둠에서 헤어 나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심연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는 손길은 거부할 틈을 주지 않고 나를 집어삼킨다. 때론 가만히 침잠해 어둠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 어둠을 즐기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여리가 끊어버리고 싶어 했던 그 기억, 차마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 아픔과 상처,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그 아픔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할지 언젠가는 결정해야 한다. 여리는 아빠의 도움을 받아 잃어버린 그림자들을 다시 자신의 발에 꿰기로 결정한다. 그 아픔과 상처를 온전히 마주하기로, 그것들을 끌어안기로 결정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 내게도 있는 그 어둠을 가만히 마주했다. 나도 가만히 그 그림자를 안아보기로 한다. 아프고 눈물 나지만 그래도 가만히 안아보기로 한다. 그림자는 이내 나를 집어삼켰다. 그래도 그 심연에 가만히 앉아보기로 한다. 지금은 주저앉아 있지만 언젠가 내 발의 힘으로 이 심연 가운데 일어서게 될 때, 그때 내게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 출판사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림자 상점 / 변윤하 저 / &(앤드)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