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세스한스 다시 암스테르담
새벽부터 일어나 잔-세스한스(잔세스킨스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이렇게 발음하니 로컬 아무도 못알아 듣었다.) 풍차마을로 향했다. 네덜란드 내에서도 몇 안되는 주요관광지다 보니 이른 시간에도 중국패키지 팀이 이미 몇 팀 들어와 있었고 그 뒤로도 끊임없이 버스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도시야 그렇다 쳐도 여기선 하늘이 조금만 도와주길 바랐건만 비가 내리지 않는게 고마운 흐릿한 하늘이다. 또 1유로를 더 내고 종이티켓을 샀다. 이럴줄 알았으면 인터넷 카드결재를 좀 더 쉽게 세팅할 껄 그랬다. 사용할 줄 모르는 내 잘못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그림이나 사진에서만 보던 풍차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풍차들의 예쁨도 좋았지만 이 풍차에 얽힌 이야기들이 더 좋았다. 아직까지도 이곳엔 대를 이어 풍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사포질을 하고 그 나무를 다시 몇번이나 물에 담그고 말리기를 반복하며 풍차를 만들고 끊임없이 손본다.
땀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수많은 불로소득이 가능한 방법이 있고(누구는 그것도 노동이라 한다지만) 각종 부동산과 펀딩을 통해 소득을 극대화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땅보다 땀의 가치가 더 인정받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라 믿는다. 마을 곳곳에서 망치를 들고 나무를 옮기는 인부들의 다 낡은 망치과 굳은 손을 괜스리 바라보았다.
영어가 짧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 마을은 풍차뿐 아니라 대를 이어오는 초콜렛도 인기다. 마을 곳곳에는 진한 핫초코를 파는 가게가 늘어서있다. 한 잔에 2유로. 싼 가격은 아닌것 같지만 어떻게 안먹고 돌아가겠는가. 뭐 어쨌거나 초코는 진리다.
한나절을 둘러보고는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입출입에 특별한 검사를 하지 않는 유럽의 다른 역과 달리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한국의 지하철과 꼭 같다. 패스를 찍어야만 플랫폼의 출입이 가능하다.
두세달 전에 예약이 이미 끝나버린다는 <안네의 집>을 당일 풀리는 표로 운좋게 구했다. 안네 프랑크가 살던 집은 그녀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 당시 사진과 함께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방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벽에 붙은 사진, 몇몇 가구들은 9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2차 대전의 흔적은 유럽 주요 도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나치의 만행을 날 것 그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려 노력한다. 이는 2차 대전의 주범인 독일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되새기고 용서를 구하며 아픈 역사를 치유해 간다. 그 역사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안네의 일기 구절구절들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그녀가 살던 집 곳곳에 씌여있고 그 앞에서 어떤 이들은 하염없이 그 앞에 서 있기도, 어떤 이들은 참회하듯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안네의 집 직원 중 내년 4월에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한국말을 조금 배웠고 K팝을 사랑한다는 네덜란드 직원을 만났다. 대뜸 ‘한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어보고는 서툰 한국말을 구사하며 좋아한다. 내년 4월에 한국에 오면 하루정도 가이드를 해주겠노라 약속하고 싶었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는게 아닌지라.
걸어 담광장을 넘어 렘브란트가 살았다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 또한 박물관이 되어 있었고 살아생전 그의 작업실과 약간의 그림들(그의 주요작품은 대부분 네덜란드 국립미술관과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단다), 그리고 그의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렘브란트 그림이라곤 <탕자의 귀환>을 제외하곤 아는 것도 없는데 들어서니 눈에 익은 그림이 많다. 짧은 기억을 되짚자면 그는 젊어서는 성공한 화가였으나 그의 방탕한 상활과 낭비벽으로 말년에는 큰 어려움에 처한다. 그리고 그린 작품이 <탕자의 귀환>이다. 그는 르네상스 이후 더는 그리지 않는 종교화를 그렸는데 그에게 신은 어떤 의미였을까?
튤립, 풍차, 운하, 반 고흐, 하이네켄, 렘브란트 정도가 네덜란드를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틀렸다. 네덜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일본 캐릭터로 느껴지는 토끼 미피를 종종 발견하는데. 와 세상에 이 토끼 메이드 인 네덜란드란다. 어쩐지 나막신 신은 미피 한 마리 모시고 올껄 그랬다. 풍차를 사오기는 뭐해서 기념품 가게에서 튤립을 몇 송이 샀다. 비가 좀 내렸지만 그냥 가기 아쉬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를 걸었다. 예쁜 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꼭 한 번 살아보고픈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