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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도가와 J Jul 30. 2020

업무계약서에 웃고 울다

일본온지 2년 6개월만에 사고를 쳤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송코디네이터 업무에 뛰어들었다. 이 바닥에서 날고 기는 방송코디들이 많아 영업방법과 포지셔닝에 대해 고민을 많이했다.


우선 전직장인 만나면 좋은 친구 M본부에서 가지고 온 PD수첩에 등록되어 있는 방송인들의 메일을 정리했다. 3사방송사, 지역방송사, 그리고 독립피디들까지 합치니 어마마한 숫자였다. 그들에게 전직장에서 배운 방송경험을 살려 일본에서 방송코디업무를 시작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였고, PD수첩은 그 기회를 잡을수 있도록 도와줬다.


2010년 T본부에서 연락이왔다. 세계육상대회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건이였다. 무조건 맡고 싶었고, 타 방송코디에 비해서 조금 저렴한 금액과 업무계약서를 전달했다. 이것이 나의 포지셔닝이였다. 방송일 경험은 있지만, 방송코디업무는 처음하는 일이고 일본어에 대한 자격지심?이 조금 있었기에 비용을 조금 줄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또한 방송코디들은 입소문과 구두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난 양사가 해야할 업무를 명확하게 하고,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하고자 업무계약서를 작성했다. 이것이 T본부의 담당피디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취재를 맡게되었다. 현장취재는 무사히 마쳤고, 그녀가 복귀 후 입소문이 잘나 그해부터 T본부의 일본취재는 내가 맡게 되었다. 제작진이 원하는 취재가 잘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기존의 코디업계에서 없던  업무계약서가 나를 이렇게 호강시켜줄지 꿈에도 생각못했다. 그래서 그 계약서는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취재업무를 하나씩 하면서 내공이 쌓였고, 한국방송사에 이름도 알려지면서 생각보다 빨리 상전벽해했다. 의뢰가 많아 현장에 나갈수 없어 베테랑 선배들에게 토스하기도 하고, 반대로 고객이 나의 일정을 맞춰주는 사례도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 업무계약서 조차, 무용지물이 된적도 있다. 2014년 한국의 모제작사와 함께 한일공동제작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첫거래라 관행처럼 해오던 업무계약서를 작성했다. 중간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일본취재 이틀을 남겨두고, 출연자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일본을 갈수 없다며 전면취소를 요청했다. 아무런 의심없이 긴급상황을 사태수습했다. 이번 취재는 출연자가 많아 중형버스를 예약했는데, 급취소로 인하여 내가 대신 위약금을 물었다. 한국으로부터 대금지연이 되고, 예전처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제작사를 의심했다. 사비를 털어 한국까지 방문해 제작사대표와 담판을 지었지만, 결국 그는 잠수를 탔다. 지금도 연락이 안된다. 당시 업무계약서가 나의 발등을 찍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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