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JBC를 설립한지 10년이 되는 해다. 300여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위해 일본 전역을 다니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맛난 것들을 먹고, 좋은 구경과 체험을 하며 많이 배웠다. 특히 2020년 도쿄 올림픽이라는 큰 이벤트에 기대감이 컸는데 코로나가 창궐하여 모든게 엉망이 되었다. 이틈에 10년간을 되돌아보며 그 기록을 하나씩 하나씩 남겨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문화 중의 하나인 "연하장". 신년을 맞아,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1년간 추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소식을 전한다. 디지털시대에 카톡이나 라인이나 페북 같은 SNS으로 소식을 전할수 있지만, 자필로 적힌 편지나 엽서를 받을 땐 뭔가 기분이 묘하면서 흐믓하다. 방송이 끝나고 협조해주신 분들에게 DVD를 보내드리는데 답장으로 연하장 또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다. 어떤 분들은 취재현장의 사진을 잘라 종이에 붙이고 그때의 추억까지 되살려주신다. 너무나 고맙고, 힘이 난다.
2013년 여행전문채널 T본부의 취재로 큐슈 올레길을 방문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긴 했지만, 일본에는 아날로그 휴대전화를 쓰시는 분들이 많으셨다. 관광과 공무원은 취재현장을 디카로 찍고 어느새 인화를 해서 취재팀과 헤어질 때 추억을 간직하라며 선물로 주셨다. 물론 사진을 멜로 보내면 간단하지만, 사비를 털어 이날로그식 사진을 준비해준 건 너무 감동적이였다.
취재로 해외에 나가면, 먹거리는 참 중요하다. 일본음식이 한국인들에게 불편함을 주진 않지만, 뭔가 2% 부족한 부분이 있다. 국물이 짜다거나, 자극적인 매운맛이 없거나 밑반찬이 부족할때가 종종있다. 그래서 촬영기간이 길다보면 한국식당을 찾곤한다. 문제는 일본에 있는 모든 한국식당이 똑같다고 말할순 없지만, 한국과는 완전 다른 일본식으로 경영을 한다. 당연히 그 나라에게 가면 그 나라의 법을 따라야하지만, 사소한 행동으로 취재팀을 불쾌하게 만든다.
2018년 종편채널 CA본부 취재로 니가타현을 방문했다. 무사히 촬영을 마무리하고 니가타시의 공무원과 함께 뒷풀이를 하기 위해 한국식당을 찾았다. 주인장이 일본어로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라고 했다. 우린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니 한국사람을 간만에 만났는지 얼굴에 생기가 돌며 잘 챙겨주셨다. 배가 많이 고파 이것저것 시키고 배불리 먹었다. 계산할려고 계산서를 보니 주문하지 않은 것도 있어서 물어보니 주방에서 아내되시는 분이 "한국 사람들 진절머리 난다"고 하길래, 내가 빡쳤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나물등 밑반찬으로 나온 것을 다 청구한것이였다. 일본에서는 오토오시(お通し, 손님이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 전에 내는 간단한 음식, 다른말로 “츠키다시”라고도 한다)는 돈을 낸다. 그래서 음식을 줄때 오토오시라고 반드시 얘길한다. 주인장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녀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화를 불러일으켰고 일본에 있는 한국식당과 한국인을 바라보는 나쁜 선입관이 생겼다.
2019년 M본부의 사케취재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취재팀이 젊은층도 아니고 다들 한분야에서 30년이상 하신 국장급에 산해진미를 다 즐겨보신 분들인데 우리가 찾은 한국식당의 서비스는 완전 엉망이였다. 고기불판은 갈아주지 않고 물티슈로 닦았고 밑반찬은 아예없고 뭐든지 주문을 해야했다. 고기로 부족한 배를 살짝 채우기 위해 김치찌개를 3인분 시켰는데, 1인분씩으로 나가니 한 냄비에 해줄수 없다고 했다. 주인장 마음데로였다. 다들 식사하고 나가면서 얼굴 표정들이 안좋으셨다. 담날 우린 370년역사가 있는 사케(청주) 양조장을 취재하고 취재처로부터 고급사케를 한병씩(총 5병) 받았다. 다들 술을 좋아하셔서 이자카야(일본식 술집)가서 식사하며 가게 주인장의 동의만 있다면 마시고자 2병을 챙겨갔다. 저녁식사가 될만한 음식을 시키고 우선 맥주 한잔을 마셨다. 난 주인장 눈치를 살피며 지참한 사케를 마셔도 되냐고 물었다. 주인장은 "편하게 마시세요"라며 반대로 그 술에 잘 어울리는 지역메뉴를 알려줬다. 어제 식사한 한국식당과는 완전 다른 모습에 선배님들이 기분이 좋으셨는지 지참한 사케 2병을 다마시고 가게에서 인기있는 사케 2병을 쏘으셨다. 역시 말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올해 K본부 첫 취재로 만난 83세 I상 집에서 맛본 “백초수(百草水)”차 백가지의 약초가 들어가 있는 건강차였다. 한방차처럼 조금 쓰지 않을까 했는데 향이 좋고 목넘김까지 좋았다. 난 차가 맛있다고 I상에게 얘기하며, 기록용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협조로 잘 끝났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 I상으로부터 소포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그때 마셨던 건강차 3팩과 그걸 보관할 때 사용하라고 손수만든 천주머니도 들어있었다. 짧은 취재였지만 내가 한 말을 잊지 않고 멋진 선물과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주셔서 감동받았다. 이런 소소한 것들은 나에게 항상 힘이 된다.
2017년 K본부 어묵취재로 나가사키를 방문했다. 80살이 넘으신 요리연구가로 이 지역에선 꽤 유명한 분이셨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셨다. 더위로 힘들법한데 싫은 내색없이 웃으면서 취재팀을 챙겨주셨다. 맛난 점심은 기본이고, 밥먹고 나면 나릇해지는데 안마의자에 앉아서 10분간 피로를 풀라며 제촉하셨다. 우린 괜찮다고 했지만 할머니의 자상함에 꼬리를 내릴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자식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이라고 할까, 우린 취재만 잘된다면, 바랄 것이 없는데 난 그녀의 작은행동에 감동했고 그 배려를 배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