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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도가와 J Jun 22. 2020

실적도 없는데, 제작지원을 받다

위기는 기회다. 누가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명언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경제는 휘청했고, 무엇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일본을 방문하는 해외관광객은 전멸했다. 당시 일본여행업 하셨던 분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에 내가 하는 방송취재업무는 순조로웠다. 사실 취재코디네이터업무는 한국 방송사로부터 취재의뢰가 없으면 손가락을 빨아야한다. 즉 감이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이 일을 하면서도 내가 주체가 되어 할수 있는 뭔가를 갈망했다. 방송아이템이나 기획은 돈이 들어가지고 않고 자유스럽게 할수 있는 일이라 예전에 일본정부관광국(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와 동일한 조직)이 해외미디어에 제작지원을 한다는 지인의 얘기가 문득 생각났다.


난 일본정부관광국의 홈페이지를 꼼꼼히 읽어보니, 일본관광정보를 해외현지미디어에 발신하는 지원사업이 있었다. 서둘러 담당부서에 전화돌려 자조치정을 설명하고 미팅을 요청했다. 일본을 방문하는 해외관광객이 전멸해서 그런지 담당자는 흔쾌히 약속을 잡아줬다.                                   


정부사업인데, 계약서 안써요?

일본정부관광국의 담당자 K상과 미팅이 잘끝났다. 난 이 기회를 반드시 잡고 싶었다. 하지만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전세계가 주목하고 방사능유출로 인해 불안해하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안전하니 여행오세요라는 프로그램을 제안할수 없었다.자연스럽게 일본을 노출할수 있는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난 명균형이 제작하고 있는 K본부의 등산프로그램과 인형극을 테마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던 G본부의 테마스페셜을 일본정부관광국에 제안했다. 업무처리는 의외로 신속했고 제안서는 한방에 통과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계약서를 작성하자는 얘기가 없었다. 담당자를 오프라인에서 두번 만났고, 나머진 메일과 전화로 업무처리를 했지만, 도장과 문서의 나라인 일본에서 계약서 없이 진행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었다. 만약 일을 진행하고 계약서가 없는 관계로 예산을 받지 못한다면 나한테는 큰일이였다. 부랴부랴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김대표: 제안서는 통과되었으니, 최종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야하지 않나요?

K상: 이번 프로젝트는 긴급지원사업이라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 주고 받은 메일 내용으로 내부승인이 떨어졌기 때문에 계약효력이 있습니다.

김대표: 정말요? 그럼 안심이네요.

K상: 걱정마시고 진행해주시길 바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대표: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난 더 이상 의심없이 촬영준비에 속도를 냈다. 세부내용 조율은 을지로에 있는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의 담당자와 자주 연락을 취했다. 그녀가 알려준 팁인데, 일본정부관광국의 해외미디어 지원사업은 몇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첫째, 정확하게 미디어노출이 보장되어야한다. 즉 제안한 기획서데로 방송이 반드시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당시 종합편성채널이 없을때라, 일본측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이 채널파워과 시청률이였다.


둘째, 반드시 정해진 기간에 방송이 되어야한다. 일반적으론 예산집행해서 내년 3월안으로 방송을 하면 되지만, 긴급제작사업의 경우, 일본정부관광국에서 정한 날짜에 방송해야하기에 일반지원보다는 기간이 짧아서 포기하는 팀이 많다고 한다.  


셋째, 제작지원비 지급은 보통 두가지라고 한다. 제작사가 사전지불하고 사후정산 처리가 일반적이다. 다만 총알이 없을 경우, 일본정부관광국과 계약을 맺고 있는 여행업체에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체재비(항공료, 숙식비, 차량 등)를 일임하고, 현장에서 사용되는 일부금액을 사후정산하는 방법도 있다.  


난 이걸 발판으로 일본의 대형광고대행사(덴츠우, 하쿠호도, ADK)와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일본지자체의 제작지원 사업까지 확장할수 있었다. 위기가 나에게 기회를 줬고, 난 그 기회를 제대로 잡았다. 실적도 없는데, 일본정부로부터 제작지원사업을 따낸 건 타이밍과 운빨의 결정체였다.


참고로 덴츠(電通)와 하쿠호도DY홀딩스(博報堂DYホールディングス)는 일본을 대표하며 라이벌관계인 광고대행사다. 덴츠가 최고 잘나갈때는 연매출이 2조엔 (현환율로 22조원)으로 업계1위였으나, 최근 하쿠호도가 덴츠를 누르고 업계1위로 등극했다. 2019년 하쿠호도의 매출이 1조 4456억엔, 덴츠가 1조 185억엔이다. 일본관광을 한국미디어에 홍보하는 정부지원사업은 하쿠호도가 강자인데, 예전과는 달리 제일기획과 하쿠호도가 합작하여 설립한 하쿠호도제일에서 기획서를 접수받고 심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이쪽 분야에 관심있으신 업체나 제작자는 하쿠호도제일 담당자를 잘 설득해보시길 바랍니다.


K본부 영상앨범 산 <홋카이도의 대설산> 촬영현장

현장 취재가 7월이였는데 대설산 정상은 아직도 눈이 있었다.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지만, 산장 근처에서 만난 여우는 아직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G1본부의 인형극 다큐멘터리의 촬영 현장

한국의 인형극 전문가 2명이 일본 전역을 여행다니며 일본의 인형극을 체험하고 배워보는 로드다큐멘터리.  도쿄, 니가타현, 나가노현, 아이치현. 특히 나가노현 우에다시(上田市)는 지인이신 오지마시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축제도 참여하고 고급 료칸에서 산해진미와 온천으로 피로를 날려버렸다. 벌써 9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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