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임스 Nov 03. 2019

그래서, 회사의 비전이 무엇이죠?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그래서, 회사의 비전이 무엇이죠?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 편하게 질문하셔도 됩니다"

“어떠한 질문도 괜찮아요. 월급은 밀린 적 없는지, 회식은 얼마나 하는지 등이요"


나는 항상 면접 인터뷰 말미에 지원자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 달라고 한다. 대다수는 회사의 분위기나 본인이 지원한 직무에 관한 디테일한 질문을 한다. 혹은 왜 창업하셨는지를 묻는 독특한 지원자도 있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여러 번 겪은 지원자는 회사의 매출이나 성장률을 묻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면접 시간은 회사와 지원자 서로가 인터뷰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 없이 많은 질문과 다소 민감할 수 있는 것을 묻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 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 파악해보려 한다. 대게 면접자가 질문하는 것은 내가 항상 많이 들었던 내용이다. 그래서 막힘 없이 답변하곤 면접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창업 초기 어떤 지원자가 이 질문을 했다. “회사의 비전이 무엇인가요?”


나는 공돌이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는 전산 동아리 활동하면서 취미로 코딩을 했고, 공대, 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SW 엔지니어로서 회사를 다녔다. 하다못해 군대도 공병(工兵, military engineer)을 다녀왔다. 그래서 요즘은 경영 전공의 대학생도 다 아는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model, 마케팅의 4P는 물론 경영학 원론에 나온 내용도 모르는 상태로 창업을 하였다. 그런데 ‘회사의 비전' 이라니? 목표를 묻는 것인지 해서, 우리는 다음 분기에 서비스의 어떤 기능을 업데이트할 것이고, 매출과 다른 성장지표는 이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지원자는 만족하지 못한 표정을 지으며 면접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Photo by Paul Hanaoka on Unsplash


대체 비전이 무엇일까?


그 이후에도 면접뿐만이 아니라 직원과의 면담에서도 종종 ‘회사의 비전'을 묻는 경우가 생겼다. 대체 비전이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회사의 목표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던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하여 글로벌 기업이 된 몇 개 회사의 비전을 살펴보았다. 

페이스북: To give people the power to build community and bring the world closer together

구글: To provide access to the world's information in one click

애플: We believe that we are on the face of the earth to make great products and that's not changing


글로벌 기업의 비전은 탁월했다. 문장이 다소 추상적이지만 기업이 추구하는 컨셉을 명확히 담고 있었다. 그 한 문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지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비전 역시 살펴보았다. 

삼성: 미래 사회에 대한 영감, 새로운 미래 창조

현대자동차: 자동차에서 삶의 동반자로

SK텔레콤: 새로운 가능성의 동반자

CJ: 건강, 즐거움, 편리를 창조하는 글로벌 생활문화기업


글로벌 기업보다 조금 더 추상적이지만 역시 기업이 영위하고 있는 업의 특징이 문장에서 보여줬으며 추구하는 바가 느껴졌다. 대체 이 비전이 왜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 직원의 의도는 무엇일지 생각하며 비전에 대해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얼마 전 이은세 님의 칼럼을 보니, 회사는 절대로 파운더가 원래 가졌던 비전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나의 다른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팀 역량은 팀을 이끄는 리더의 역량에 수렴한다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비전 수립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을 느꼈다.


공부할 것도 많고 정할 것도 많았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모든 책상 위에 컴퓨터를, 모든 가정에 컴퓨터를’이라는 비전을 갖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들었고 실제 이를 달성하였다. 필립 코틀러의 ‘마켓 3.0’에서는 비전은 기업의 미션과 가치를 기업의 미래 전망과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기업이 미션 중심인지 비전 중심인지에 따라서 기업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었다. 비전은 기업의 구체적 목표이고, 미션은 비전의 상위 단계로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공부할 것도 많고 정할 것도 많았다. 


그래서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일을 멈추고 비전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창업 초기 10명 안 되는 초기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방향성을 정해 보고자 한 것이다. 비전, 미션, 핵심가치, 전략 등 정할 것이 많았다. 짐 콜린스가 “성공적인 비전을 가진 기업은 일반적인 기업보다 12 배나 높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라고 주장한 것을 믿으며, 우리도 성장하고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한 꿈을 꾸면서 우리의 비전을 정한 것이다. 우리는 ‘데이터 시각화’ 제품과 기술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즐겁게 세상을 보여주자'라는 미션과 ‘Data Democracy(데이터 민주화)’라는 비전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미션에 나온 것처럼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각종 전략과 제도를 정비하였다.


Photo by Kevin Delvecchio on Unsplash


비전에 시간을 쓰지 않는 경영자는 멍청이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에만 집중하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미래의 비전을 정하니 나와 직원들 모두 왜 이일을 해야 하는지가 확실히 명확해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대로 비전, 미션, 핵심가치, 전략 등 이 모든 것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루의 워크숍으로는 당연히 부족하였으며, 몇 차례 회의와 토론을 이어갔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과연 이 비전이 그렇게 중요할까라는 의문도 든 것이 사실이다. 정말 위대한 기업들은 전부 이렇게 비전 설정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쓸까? 물론 비전의 중요성을 연구하고 주장한 수많은 연구자들이 존재한다. 이런 자료를 보다 보면, 조직의 비전에 시간을 쓰지 않는 경영자는 멍청이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비전 설정과 유지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지만 위대한 기업이 되는 걸까?


네이버는 실제로 명시적으로 공개한 비전이 없다. 통신 분야의 변하지 않는 1위인 SK텔레콤보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약 5~6조 원이 더 크다. 네이버는 그럼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네이버의 지난 성장을 살펴보면, 분명 단계별 목표와 전략이 확실했으며 빠르게 사용자의 니즈에 대응하여 시장을 장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서 오래전에 설정하고 변하지 않는 비전은 독이 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짐 콜린스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도 위대한 회사로 전환한 경영자들은 버스를 어디로 몰고 갈지 먼저 정하지 않았고, 그들은 적합한 사람들을 버스에 먼저 태우고 어디로 갈지 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항상 지향하는 목표는 있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 비전 중심의 회사보다는 목적이 이끄는 회사가 나에게 맞다고 결론 내었다. 


Photo by Burst on Unsplash


비전에 관해서 묻는 직원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의도 일까?


창업기업 CEO는 강점이 개개인별로 모두 다르다. 전략, 마케팅, 영업, 운영, 자금 등에 하나 이상의 강점이 있고, 이에 따라서 영업 중심의 회사인지 운영 중심의 회사인지 등으로 회사의 성격도 정의된다. 그래서 나는 다소 철학적인 비전 중심의 회사보다는 목표와 목적 중심의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회사의 비전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는 면접자 또는 직원에게 명확하게 답변하였다. “우리 조직은 데이터 민주화라는 비전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비전은 언제든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번 분기, 올해, 내년의 목표를 명확히 서로가 공유하고 있고 이를 달성하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도 업데이트됩니다.”


그런데 한편 조직의 비전에 관해서 묻는 직원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의도 일지 궁금해졌다. 내가 경험한 이 유형의 직원은 크리스 길아보의 ‘두 번째 명함'에 나오는 ‘기쁨-보상-몰입’ 모델에서 ‘기쁨'을 최우선 순위로 추구하는 직원이었다. 본인이 좋아하고 기쁘게 일하기 위하여 준비된 조직인지, 생각이 있는 대표이사 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물론 모두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인 이러한 성향이었다. 이들에게는 보상을 위한 인센티브보다 회사의 성장 목표를 알려주고 같이 달성하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면 ‘워라밸'도 무시하면서 조직에 상당한 충성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보여주지 못하면 금방 이탈할 수 있는 양날의 검 같은 유형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재는 그를 관리하는 리더가 명확한 동기부여, 일의 명분, 그리고 회사의 장단기 목표와 공유를 해줄 때 좋은 성과와 충성도를 보인다. 상당히 좋은 인재이면서도 다른 관점으로 보면 꽤 골치 아픈, 손이 많이 가는 유형이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유형의 대표이사인지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서 채용하거나 관리해야 할 것이다. 다른 회사에서 S급 인재라고 인정받은 사람이 우리 조직에서 최악의 성과와 핏을 보여줄 때도 있다. 당신의 조직과 당신에게 맞는 인재, 그리고 목적(또는 비전)을 알아채는 과정이 사업 운영이라고 생각한다.


Photo by Jeremy Lapak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