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임스 Nov 05. 2019

대표님이야 말로 너무하시는 것 아닌가요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대표님이야 말로 너무하시는 것 아닌가요


“네이버 출신 3명이 창업한 모 스타트업”

“100억 펀딩 받은 카카오 출신 창업자"

“삼성전자 사내 벤처 시리즈 A 투자 유치"


가끔 뉴스를 보면 대기업 출신 창업자 이력 덕분에 초기부터 조명 받는 스타트업이 보인다. 이제 막 설립한 창업기업은 비용이 들지 않는 마케팅 기회가 소중하다. 그래서 이런 기사를 보면 막연히 부럽기만 하다. 나 역시 창업 직전에 두 군데의 대기업을 다녔지만 각각 일 년 정도 아주 짧게 근무했기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특히 초기에 기업을 알리거나 10억 미만의 초기 투자를 유치할 때, 창업자의 배경이 제품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나의 경우, 공동 창업자 모두 우수한 역량이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대기업 출신은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대기업 출신에 대한 갈증이 존재하였다.


짧지만 나의 대기업 경력을 이용하여, 영업이나 투자 유치에 도움받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기업에서 우리와 관련된 부서의 담당자를 찾아내서 미팅할 때, 나의 전 직장 동기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 짧은 경력만 써먹을 수는 없고, 언제까지나 내가 모든 미팅에 다 참여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탄탄한 대기업 출신 경력 직원을 채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혹은 초기 기업에는 인건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니어급(5년 미만)의 직원이 1/3 이상 존재한다. 그래서 조금 더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있거나 일을 혼자서 추진할 수 있는 고 경력의 직원을 원하게 된다. 

Photo by Warren Wong on Unsplash


어린 조직은 자유로운 회사를 원하고, 

젊은 조직은 자율을 추구한다


나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20대에서 30대 초중반으로 구성된 회사를 보고 있으면 여기가 회사인지 동아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조직의 분위기가 젊은것과 어린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자율과 자유의 차이인데, 자율은 정해진 것은 충실히 지키되, 정해지지 않은 것은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정해진 것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이다. 그런데 어린 조직은 자유로운 회사를 원하고, 젊은 조직은 자율을 추구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본격적으로 경력직을 채용하면서, 나보다 경력 많고 나이 많은 사람을 선호하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하거나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을 채워줄 것을 희망했다. 특히 광고 데이터 관련 신제품 준비를 하면서, 해당 분야를 리딩하고 있는 대기업에서 10년 조금 안되게 일했던 사람을 사업개발 팀장으로 채용하였다. 그 직원은 전 직장에서 공식적인 팀장 경험은 없었으나 본인의 부사수를 여러 명을 데리고 프로젝트를 리딩 해봤던 경험도 갖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 적합했고 많은 기대를 하였다.


그 직원은 성격도 젠틀하고 나와는 물론, 동료 및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에도 문제없었다. 대게 대기업 출신이 스타트업에 합류하여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불만을 품는 것은 예산 부족과 프로세스의 부재이다. 이제 막 만들어가는 회사에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존재할 리 없다. 그래서 대기업 일처리 방식의 익숙한 경력 직원들은 이 부분에 많은 탓을 한다. 하지만 이 직원은 그런 단점도 없었다. 회사의 상황을 이해했고 그 안에서 일을 진행하려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 점은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부분이다. 


Photo by pixpoetry on Unsplash


프로세스 탓을 하지 않았지만,

만들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직원이 맡은 팀은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맡겨진 일 중, 열의 아홉은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프로세스 탓을 하지 않았지만 프로세스를 만들지도 못하였다. 내가 가이드하는 방식 그대로만 따라서 수행하고, 개선이나 신규 제안을 주지 못하였다. 가이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일은, 전 직장에서 했던 방식으로만 시도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업무를 진행하였다. 게다가 본인 팀에서 일할 팀원을 채용할 때도 문제가 있었다. 팀의 부족한 역량을 채워줄 사람보다는 전반적으로 조금씩 경험이 있는 사람을 채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팀의 영업 역량이 부족하다면 영업 중심 인재를 채용해야 하는데, 영업도 조금, 광고도 조금, 제휴도 조금 해본 사람을 선택하였다. 이는 철저히 대기업에 어울리는 인재이다. 대기업에게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주어진 프로세스 안에서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맞다. 하지만 창업 조직 또는 작은 회사에서는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다. 이런 결과 때문에 나는 그 직원에 대해서 많은 실망을 하였다. 특히 높은 연봉만큼 기대도 컸기에 더욱 실망감이 강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중, 글로벌 기업에게 간단한 제안을 하는 업무가 해당 팀에게 할당되었다. 그런데 최종 결과물로 한글로 된 문서를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영작을 왜 안 하였는지 물었더니 본인 팀에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만 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순간 이 직원과 더 일을 못하겠구나를 느꼈다. 그리고 너무 화가 나서, 그 팀 전부 4년제 대학 나오지 않았냐고 하면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이 직원은 탁월하지도 않았고 간절하지도 않았다. 대기업 출신에게 바랬던 장점은커녕 단점만 존재했던 것이었다. 인재를 선별하지 못한 나의 채용 과정의 실패였다.


Photo by Alex Holyoake on Unsplash


고구마 수십 개를 먹은 것처럼 목이 탁 막혔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진 퇴사하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 직원이 채용했던 팀원 한 명은 입사한 지 2주도 안되었던 상태였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빠른 정리가 서로에게 좋다고 판단되어 퇴사를 확정하였다. 남은 기간 동안 진행하던 일 마무리와 인수인계를 철저히 해달라고 지시하였다. 당시 나도 너무 바쁘다 보니 그 이후에 체크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퇴사 당일이 되었다. 그리고 진행하던 일 마무리 상황을 알려달라고 해서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제대로 마무리된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직원에게, 참 너무 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 직원이 나에게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대표님이야 말로 너무하시는 것 아닌가요


어이가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었나? 고구마 수십 개를 먹은 것처럼 목이 탁 막혔다. 퇴사 당일 화를 내봤자 나와 회사한테만 안 좋다는 것을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어떤 직원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병가를 신청했다가 거부하자 자진 퇴사하고 구글, 네이버에 회사 평점 테러를 한적도 있다. 그래서 이 직원의 “대표님이야 말로 너무하시는 것 아닌가요”라는 주장에 한번 사정을 들어봤다. 그 직원은 가용할 만한 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였다. 


게다가 보통 기업에서 퇴사 직전에는 휴가를 쓰는 식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너무 끝까지 부려먹으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도 무조건 해내라는 나의 업무 지시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에 공식적인 제안 하는 문서인데 영어를 잘하는 직원이 없는 본인 팀이 맡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말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잘 가시라는 말과 함께 바로 퇴사를 시켰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점에 그 직원을 짐을 싸서 퇴사를 하였다. 


솔직히 이 부분은 누구의 잘못인지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영작도 못하는 팀에게 영작을 시킨 나의 잘못일까? 만약, 전문 번역가의 견적을 준비해와서 전문가를 쓰자고 했다면 충분히 검토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마무리해야 할 업무가 만약 퇴사 시점까지 역부족이었다면, 역시 나에게 말했다면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퇴사 일자를 넉넉하게 잡던지, 아니면 다른 직원에게 인수인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 말고는 도저히 나에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Photo by Waldemar Brandt on Unsplash


걸러야 하는 유형은 존재한다


물론 모든 대기업 출신 직원이 이런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걸러야 하는 유형은 존재한다. 일단 스타트업이나 작은 회사를 대기업의 도피처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유형은 업무 역량을 떠나서 분명히 우리 조직에 실망을 하고 다시 또 다른 도피처로 떠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차례 면접을 통해서 지원동기와 현재 몸담고 있는 직장의 퇴사 사유를 여러 각도로 반복해서 물어보자. 많은 부분 필터링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오랜 기간 동안 단 하나의 좁은 직무에 집중되어 있는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정말 좁은 직무 하나만 해 본 경우다. 대기업에서는 생각보다 자의적 혹은 타의적에 의해 직무 전환을 할 기회가 많다. 오랜 기간 동안 하나의 좁은 직무만 경험했다는 것은 전문성 부분에서는 좋으나, 유동적이고 다이내믹한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그리 큰 장점이 되지 못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성향에다가 리더 경험까지 없는 사람을 우리 조직의 팀이나 본부 리더로 세팅한다면 정말 최악의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원이나 환경 탓을 하는 사람이다. 작은 회사는 자원과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 위키백과의 스타트업 정의를 보면,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작은 그룹이나 프로젝트성 회사”라고 한다. 즉 아직 제대로 된 회사가 아니다. 그러니 분명 실망할 것이고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면접에서 실패 경험과 그 이유에 대해서 아주 디테일하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하는지 아니면 남 탓만 하는지 보면 이런 유형을 거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걸러야 하는 유형을 제외하면 대기업 출신은 우리 조직을 한 단계 더 점프 업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특히 회사를 막 시작하는 시점(시드 투자받기 전)이나 창업 후 데스 벨리를 막 지나서 J-Curve로 성장할 때 대기업 출신이 있다면 더욱 그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대표이사는 항상 민감하게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우리 조직 상황에 맞게 적재적소에 우수한 인력을 배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처음부터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대표이사가 되면 할 수 있다. 당신을 믿고 나아가 보기를 바란다.


Photo by Manja Vitolic on Unsplash


이전 14화 그래서, 회사의 비전이 무엇이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