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대단하다 부러워
창업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가족과 친구들의 많은 우려와 걱정을 받는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대체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여태까지 쌓아둔 커리어가 망가진다든지, 조금 더 경력을 쌓고 나가는 것이 어떠한지, 사업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은지, 준비는 제대로 된 것인지 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만약 구직 중에 방향을 전환하여 창업을 하게 된다면 이 역시 취업도 못하는데 창업은 되겠냐는 등의 사람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게 된다. 하지만 너무 기분 나빠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평형상태에 있는 그들의 세계를 당신의 창업 준비가 흔들기 때문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는 한 번의 이직 후에 서울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창업을 했다. 시작하기 한 두 달 전에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나 창업한다는 말을 전달했다. 그렇기에 우려와 걱정을 다소 적게 받았기는 하지만, 역시나 적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당신이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자의 지인이라면 이것은 꼭 알았으면 좋겠다. 그 시기 예비 창업자에게는 아무것도 안 들린다. 차라리 따듯한 밥 한 끼 사주면서 응원해주는 것이 그에게 훨씬 도움될 것이다.
실제로 창업을 하고 난 이후에는, 이런 우려를 직접적으로 혹은 예의 없게 말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엎지른 물인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봤자인 거다. 그 이후부터는 오히려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대단하다 부러워"이다. 비슷한 반응으로는 “신기하다, 난 너처럼 못할 것 같아, 난 언제까지 회사 다니냐" 등이 있다. 작은 사업을 하더라도 회사를 다닐 때에 비하면 모든 것이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경험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룬 성과들이 많아지고 이 중 일부를 보게 되면 사람들은 같이 좋아해 주고, 기분 좋은 말을 들려준다.
이 말은 나에게 많은 용기와 격려가 되고, 또다시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준다. 대표는 본인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받을 길이 많이 없다. 회사의 공식적인 성적표인 재무제표가 존재하지만 과연 이 정도의 매출이, 순이익이, 또는 다른 재무 지표들이 보여주는 수치가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지 항상 헷갈리게 만든다. 실제로 성공한 창업기업은 j curve 형태의 성장 곡선을 보이고 있다. 이 데스 벨리만 넘으면 될 것 같은데 너무 깊은 것은 아닌지, 조금 더 깊게 갔다가 상승해도 되는지 등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이럴 때 가족과 주변 지인의 대단하다는 한마디는 나를 조금이나마 안심하게 해 준다. 이런 효과 때문에 초기 창업자들이 창업경진대회의 늪에 빠지곤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었고 그 부작용이 상당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나의 성과를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너무 심하면 자랑꾼이 되겠지만, 이런 시도가 그들에게도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부모님은 내가 어느 기업에 다닌다는 하나만으로도 안심하고 뿌듯해하셨다. 70만 명이 넘어가는 청년 취업준비생의 시대에서 망할 리 없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자랑거리인 것이다. 하지만 창업을 하게 되면 안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이기에 내가 먼저 나 잘되고 있다고 알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터뷰 기사 또는 회사에 관한 보도자료가 나가면, 꼭 어머니에게 전달드렸다. 어머니가 뿌듯해하시며 주변 지인들에게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내 소중한 사람들의 뿌듯해 함에 나 역시 뿌듯해진다.
이와 관련이 있기도 하며, 대단하다는 반응 다음으로 지인들이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사업은 잘 돼가니?”이다. 한번 주변 지인에게 요즘 건강은 어떤지 물어보면, 일 년에도 수 없이 그 답변이 다를 것이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며, 지금은 좋지만 앞으로가 걱정될 때도 있을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안된다. 걱정하는 지인, 또는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예의 없는 지인도 생겨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사실 정답은 없지만, 나 같은 경우는 “먹고살고 있습니다!”라고 많이 대답하곤 했다. 맨 땅에서 시작하여 직원들 월급 주고 내가 먹고살 만큼 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리고 너무 자아도취에 빠진 대표병 걸린 창업자 같지 않기도 한 겸손의 표현도 살짝 포함되어 있다.
사업하는 대표들을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차가 꽤 좋은 것을 볼 수 있다. 나이와 경력, 회사의 크기에 비해 고급 세단이나 좋은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 나 역시 사업을 하다 보니, ‘차’라는 것이 일종의 대기업 직원의 명함과 같은 역할을 하겠구나를 느꼈다. 매번 물어보는 지인들에게 나 그래도 잘 먹고 삽니다라는 말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자주 물어보는 말이다. 이렇게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지인들이 그다음으로 하는 말은 바로, “나 좀 데려가~"이다.
특히 전 직장의 동기나 동료들을 가끔 만나면, 직원일 때의 나의 모습과 사업을 하고 대표로서의 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본인도 데려가 달라고 농담 식으로 던진다. 물론 좋은 인재라면 굴러들어 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 기억 속에 나는 동료이지 본인의 리더가 아니다. 합류하게 되면 바뀐 내 모습에 크고 작은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애쉬튼 커쳐가 연기한 2013년 영화 잡스에서, 스티브 잡스는 사업이 성공하고 나서 괴팍하고 못된 리더로 바뀐다. 특히 첫 시작부터 함께 했던 워즈니악이 회사를 떠나기 전 잡스에게 많이 변했다며 실망하는 말을 한다.
그 장면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럼 어떻게 해. 다 같이 죽자고? 풋내기 시절 모습 그대로 있으면 생존할 수가 없는데?”라고 중얼거린 것이 기억난다. 무조건 괴팍하고 더러운 성질의 리더가 생존한다는 것이 아니다. 창업가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지인들에게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것이다.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성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다른 에피소드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직원은 퇴사에 수렴한다. 그 사람을 잃기 싫다면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넘기자.
또 하나 지인들이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많이 하는 말은 본인이 구상하는 사업 아이템에 관한 것이다. 이 아이템은 어떤지, 잘 될 것 같은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하지만 내가 예지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실제로 같은 아이템이라도 창업자의 실행력과 방법, 그리고 타이밍에 따라서 그 결과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들도 본인 혼자서 생각하는 아이템에 대한 피드백이 궁금했을 것이다. 특히나 이미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비추어 질지 알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대게는 그 유사 국내외 사업을 하나 찾아서 보내주면서, 이 사업과 본인이 생각하는 사업의 차별점을 고민해보라고 피드백한다. 생각보다 세상에 없던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누군가는 시도했거나 하고 있다. 아무도 시도 안 한 사업은 안 되는 사업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진짜 제대로 된 사업 피드백을 원하는 지인이라면, 내가 먼저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요구하면 50% 이상은 답변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곤 한다.
창업아이템 설명(2~3줄 이내)
초기, 안정화 이후의 수익모델
해당 아이템의 시장 크기
창업예정일자
투자할 수 있는 자본금
본인 전문역량(ex. 개발, 디자인, 영업, 제휴, 사업기획, 팀빌딩, 마케팅, 홍보, 재무 등등)
생각하시는 아이템이 어떠한 혁신인지?(보통의 스타트업 아이템은 아래 3개 중 하나)
- 과정의 혁신(단계의 축소)
- 가격의 혁신(기존 제품에 비해 상당한 가격 이점 제공)
- 제품의 혁신(엄청난 퀄리티나 기술/제품)
초기에 가장 필요한 팀원들 종류(업무 관점)
위 멤버를 고용하실 건지, 아니면 파트너 관계로 지분 셰어 하실 건지?
지분 셰어 하실 거면 얼마나 생각하고 계신지?
현재까지 준비단계?
생각하고 계신 창업아이템과 유사 모델이 해외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는지?
사업을 하면서 가족과 친한 지인의 역할은 너무 중요하다. 대표는 직원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보상을 받는다. 그게 설령 작게 성공한 기업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항상 외로울 수밖에 없는 자리인데, 가족과 지인은 이런 나의 서포터인 것이다. 회사가 꽤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고 다시 성장세를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정말 현금흐름이 꼬여서 사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직원들의 월급이 밀릴 상황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카드를 탈탈 털어서 현금서비스까지 받아서 급여를 밀리지 않고 제대로 지급했다. 다음 달 어떻게 버틸 지도 고민되었지만, 행여 누가 알까 봐 가슴 졸이며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기를 버티고 10억 원이 넘는 계약 건을 따내고 또 다른 계약 건들도 기다리고 있는 정말 안도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행복하면서도 지친 마음으로 나는 이렇게 큰 계약을 따냈다는 말을 어머니와 친한 지인에게 공유하였다. 가족과 친구들은 또다시 나에게 그 말을 하였다. “대단하다! 네가 자랑스러워! 부럽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또다시 뿌듯해하며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큰 이모에게도 메시지가 하나 온 것이다. “소식 들었어. 정말 고생했겠네"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다들 나의 성과를 축하해주었지만, 내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슴 졸이며 꾹 참아가며 했던 시도들은 정말 겉으로는 평온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물 밑에서는 빠지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백조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 짧은 메시지가 그 날 참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날 아버지는 나에게, “축하한다. 그런데 인생을 너무 빨리 달리지 않아도 돼.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라고 하셨던 말이 기억난다. 나는 빠른 생일에다가 정말 쉬지 않고 해서 만 25세에 석사 졸업까지 확정 지었을 때였다. 군대에서도 말년 휴가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개강한 수업을 들으러 갔던 것이 기억난다. 인생도 사업도 아버지의 말처럼 빨리 달린다 고만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업은 빠른 것보다 꾸준한 성과가 중요했고, 사람들의 대단하다는 말에 취해서 나의 페이스를 망치면 안 된다. 물론 사업을 하다 보면 대단한 성과를 달성할 때도 있다. 하지만 또다시 어려운 시기도 올 것이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고, 주변에서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