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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임스 Nov 11. 2019

귀사에도 상당히 도움될 거예요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귀사에도 상당히 도움될 거예요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가서 로비에서 전화를 한다. 상대방은 일이 바쁜지 로비에서 십분 정도 우리를 기다리게 한 끝에 헐레벌떡 슬리퍼를 신은 채 내려와서 인사를 건넨다. 그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걸려서 방문했는지는 묻지도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로 안내한다. 관련 실무자들이 방을 꽉 채우고 우리는 형식적으로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다. 나는 받은 명함 중에 제일 직급이 높은 사람을 보고 이 미팅에서 결론이 나올 수 있을지를 가늠한다. 즉 상대방의 직급을 보고 그가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지 상상해본다


만나자마자 한 시간이 넘게 본인들 회사에 필요한 것을 줄줄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다. 자신들의 회사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 어떤 기술과 서비스가 필요한지, 그리고 이것이 본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나와 영업팀장 혹은 사업개발팀장은 중간중간에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잘 못 이해하지 않기 위하여 몇 번 되묻는다. 하지만, 내용은 왔다 갔다 횡설수설이다. 그 후, 최종적으로 비용에 관해서 우리에게 묻더니, 뜸을 들이다가 ‘제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협찬’ 가능 여부를 묻는다. 그리고 뒤이어서 꼭 이 말을 한다. “귀사에도 상당히 도움될 거예요


Photo by Erico Marcelino on Unsplash


모든 것이 협상이었고 

설득의 자리였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이것이 당신이 창업 기업을 운영하면서 만나게 되는 절반 이상의 기업 고객들의 모습이다. 물론 예의 바르고 젠틀하며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스마트한 고객사도 다수 존재한다. 우리에게 사무실이 어디인지 묻고 첫 미팅은 본인들이 먼저 방문하고 다음 미팅에서는 우리에게 방문을 요청하는 합리적인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막무가내식의 사람들도 많다. 물론 합리적인 예산만 갖고 있다면 막무가내식으로 요청해도 전혀 문제없다. 돈을 지불하는 고객, 즉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날로 먹으려 하면서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나온다면 참 곤란하다


본인의 창업기업이 기업 고객 대상의 B2B 사업이 아니라, 일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B2C 사업이라면 이런 경험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B2C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식으로 초반을 견뎌내야만 J curve 형태로 성장하는 어려움이 있다. B2B는 그에 비해서 다소 큼지막한 매출로 계단식 성장을 하니 예측이나 운영이 다소 용이하다. 둘 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나는 B2B 사업을 운영하면서, 초반에 고객사와의 만남이 참 신났었다. 어떻게 우리를 알고 연락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산정할지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모든 것이 협상이었고 설득의 자리였다. 서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로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요구나 무상 협찬 제안은 상대방의 가치를 ‘0’으로 보는 것이기에 나는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했던 이 말을 하곤 했다. 

XX님 제가 여기서 이렇게 착하게 다 받아들이면, 저희 회사 직원들이 피눈물 흘립니다


한 번은 직원이 유명 언론사의 기자가 회사로 전화해서 급한 이슈로 대표님을 찾는다고 전하였다. 무슨 일인가 해서 연락을 해봤더니 당시 국민 모두가 주목하는 사건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물을 원하는 기간도 말도 안 되게 짧았다. 작업을 위해서 요구사항 분석과 범위를 몇 차례 의견 조율을 통하여 확정 짓고, 나는 프로젝트 비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기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무상 협찬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기사가 나가면 회사의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선심 쓰듯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결국 프로젝트를 하지 않기로 하였고, 그 이후로는 언론사에서 작업이나 솔루션 사용 의뢰 문의가 들어오면 반드시 예산부터 묻는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요즘 핫한 기술 한번 써봐야지 하면서 접근하는 고객사는 정말 난감하다. 이 기술을 사용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과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에 처음 요구사항 분석에 다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 비용 논의를 하면 우리의 시간이 너무 아깝게 사라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Photo by James Fitzgerald on Unsplash


충분히 지불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우리를 재촉하였다

어떤 SI(system integration,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IT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해주는 회사)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님과 공동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는데, 일을 의뢰한 기업 고객의 담당자를 “고객"이라고 항상 호칭하는 것에 신기하였다. 예를 들어 ‘ABC 기업의 김 차장’이라고 말하지 않고, ‘고객과 오늘 미팅을 했는데, 고객이 이런 요청을 했어요’라고 항상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왜 담당자 이름과 직급이 아닌 ‘고객'이라고 하시냐고 물었더니, 꿈에서라도 욕하다가 실수했을 때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정말 진상 고객을 많이 겪어본 것이 느껴져서 참 씁쓸했다.


물론 언론사라고 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함께 일해봤던 서울신문, 중앙일보 등은 일반 사기업보다 훨씬 스마트한 일처리와 소통 방식을 갖고 있다. 자신들의 전문 영역과 의뢰 요청하는 우리 회사의 전문 영역을 명확히 인지하여, 정말 전문가를 잘 활용하였다. 물론 언론사 특성상 기사 하나에 투입 가능한 예산이 많지 않기에 예산이 항상 문제였긴 하다. 그런데 어떤 기자는 자신의 성과급을 개인적으로 투자해서까지 프로젝트의 퀄리티를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제 값을 다 받아야지만 할 수 있겠다고 하겠는가? 우리도 일부 희생하지만 좋은 결과물에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사례는, 모 공공기관과의 프로젝트였다. 역시 급하게 연락이 와서 너무 무리한 스케줄을 요청하였다. 당장 일부 직원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일해야 맞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그 공공기관 담당자는 급한 것을 고려해서 비용은 충분히 지불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우리를 재촉하였다. 결국 우리 회사 직원 일부가 주말 밤샘까지 하여 결과물 초안을 월요일 오전에 담당자에게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추가 수정 작업과 대금 청구를 위해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였으나,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저녁 늦게 통화 연결이 되었으나, 그 담당자는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아주 뻔뻔하게 프로젝트가 드롭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작업을 1차 완료했는데 비용은 문제없이 지급되는 것인지 물었더니, 황당하다는 듯이 드롭되었으니 비용 지급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회사의 역량 강화 연습했다고 생각하시라며 서둘러 끊어 버리는 몰상식의 끝을 보여줬다. 이런 경우가 어딨나라고 생각하며 소송이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고생했던 직원들을 챙기며 주말에 고생한 만큼 유급 휴일을 제공했던 것이 기억난다. 


Photo by Matthew Henry on Unsplash


그들도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다

당신은 이 기자와 공공기관 담당자가 기본 이하의 상식을 갖고 있는 양아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조직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며 자신에 조직에 충성한 것이다. 다만, 예의가 조금 없었을 뿐이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대표자는 계약 체결, 비용 지급 등을 명확히 확인하고 내부에 업무 지시를 해야 한다. 그런 것을 제대로 못 챙기고 일부터 시작하게 한 나의 실수인 것이다. 나도 이러한 경험 덕분에 사업을 할수록 뒤통수 맞거나 손해 보는 일은 아주 많이 줄어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협찬 형태로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무상 제공하는 것은 무조건 금지해야 할까? 아니면 도움될 때도 있을까? 무상 협찬을 요구하는 상대는 주로, 회사의 홍보나 경험에 도움될 것이라 한다. 실제로 초기 기업은 레퍼런스가 거의 없기에 주요 고객사와 바로 계약 체결하는 것이 꽤 어렵다. 보통 대기업이나 큰 규모의 기관에서는 우리 회사가 기존에 자신들과 비슷한 규모의 회사와 일은 한 적이 있는지 많이 살펴본다. 당연한 일이다. 정량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는 회사의 규모나 재무상태가 초기기업은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성적인 레퍼런스로라도 우리 회사와 계약할 수 있는 명분을 찾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확보한 주요 고객사는 다른 큰 규모의 고객사를 데려온다. 마치 B2C 사업의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기업들은 항상 경쟁사나 산업 리서치를 하고 있기에, 우리가 성공적으로 큰 규모의 기업/기관과 프로젝트를 끝내면 그것이 그들의 눈에 띄고 결국 그들과의 계약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주요 레퍼런스 확보 차원에서 제휴를 사용하는 것은, 초기 창업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전략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절대로 다다익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맞서 싸우던가

나를 낮추던가

아니면 무시하던가

실제로 우리가 성공했던 제휴는 전부 우리가 먼저 제안했던 것이다. 일단 해당 산업의 리딩 컴퍼니 또는 우리의 고객군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보완관계에 있는 회사 등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도출한다. 그리고 양측의 윈윈 전략을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우리 것을 제휴 형태로 써보는 것을 먼저 제안한 사례들이 성공적인 제휴 결과를 가져왔다. 단순히 유명한 기업이, 많이 홍보될 만한 브랜드라고 해서 상대방의 요구대로 제휴를 제공하면 99% 실패하거나 별로 우리가 얻는 것이 없었다. 


가끔은 올해는 예산 소진 때문에 구매하지 못하지만 내년에는 구매할 테니 무상 형태로 제공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것이 100% 확정이고 그들이 주요 고객이 될만한다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하지만 담당자 변경, 사업전략 변화, 예산 축소 등의 이유로 내년도 계획에서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히려 올해 유상으로 사용되어야 내년에도 유상으로 구매할 확률이 높다. 내년도 예산계획의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이런 경우에 제안을 수락할 것이라면, 아예 파트너십 체결하고 이를 보도자료로 만들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하자. 마케팅 효과라도 누릴 수 있다. 또한 내년에 구매하겠다고 하는 것을 구매의향서를 통해서 도장을 받아 두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혹은 메일에라도 남겨줘야 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항상 협상의 연속이다. 특히 외부 고객사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협상은 정답이 없다. 하지만 내 경험상 맞서 싸우던가, 나를 낮추던가, 아니면 무시하던가, 이 셋 중에 하나를 확실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싸울 대상에게 쓸데없이 우리를 낮추다가 갑질을 당해버릴 수 있다. 또는 우리를 낮춰서라도 가져가야 할 관계인데 싸우다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아예 무시해야 될 대상과 협상하다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해버리는 아까운 경우도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나의 시선이 아니라 상대방의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보면,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제안이 진짜 우리에게 도움될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Photo by Dmitry Ratushn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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