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Korea Works

by Jay

Jake,


우리가 벌써 회사 동기로 만난 지 11년이 넘었네. 뻔하고 고리타분한 BM이라고 종종 스스로를 폄하했지만 세계를 누비며 세일즈 하는 상사맨의 자부심과 재미도 항상 있었지. 매일 같이 보던 사이인데 두바이나 미국에서 보면 어찌나 반갑던지 참 재미있는 추억이었다.


우리가 동기를 넘어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이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운동과 여흥을 즐기고, 나의 영역을 지킬 줄 알고, 가족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것처럼. 그리고 이 모든 걸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적당한 부(富)가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의 그 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도 참 많은 대화를 하고 있지 않냐. 물론 그 과정이 참 재미있기도 하고 말이야.


요즘 동남아나 중남미 출장이 많은 것 같던데 그런 곳을 갈 때마다 여기는 왜 더 발전하지 못했을까, 혹은 나라의 자원은 많은데 국민의 삶의 질은 왜 떨어질까 등을 생각해보진 않았니? 너는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 미국과 우리나라를 함께 비교할 수도 있겠구나.


그 질문에 대해 꽤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는 책을 소개할까 한다. 조 스터드웰이라는 동아시아 전문 개발/경제학자가 쓴 원 제목은 ‘How Asia Works’, 국내에는 ‘아시아의 힘’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책이다. 아시아에서 왜 일본/한국/중국/대만은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부국이 되었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여전히 빈국의 위치에 있는지 분석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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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두껍지만 핵심은 꽤나 심플하다. 토지, 제조, 금융. 빈국에서 부국으로 나아간 나라들은 이 3가지 모두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 발전했다. 모두 ‘강력한 정부의 주도하에’ 변화했다.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근거, 답사를 토대로 아시아의 주요 나라들을 비교하며 설명하는데 나는 이 책에 꽤나 동의할 수밖에 없더라. 지금부터 간략하게 한국을 중심으로 내가 이해한 내용과 의견을 담아 너에게 전달해 볼게.


들어가기 전에, 자유방임주의와 시장경제 위주의 사고관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꽤나 쇼킹하다는 걸 미리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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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중일+대만 4개국 모두 시기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아주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거쳤다.


우리나라 농민은 반드시 자기 땅에서만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니? 조선시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소작농은 여전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이걸 어떻게 실현하였을까?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 소수의 지주가 갖고 있던 농지를 강제로 몰수해서 수많은 농민들에게 유상으로(사실상 거의 공짜) 분배하였다. 10년 사이에 소작농 비율이 70%에서 5%까지 떨어졌고, 1960년대 인구의 70% 이상이 농민이란 걸 감안하면 모두가 농사지을 땅이 생긴 셈이지.


알다시피 당시에는 미군정 시대였는데 소유권, 친-시장을 중시하는 미국은 당연히 반대했겠지. 근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북한이야. 북한은 공짜로 땅을 나눠준다는 공산당의 이념이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이 내러티브를 정부가 어찌 이길 수가 있겠나. 우리도 해야지.


여기까지 들으면 이게 무슨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냐 싶겠지만 재밌는 건 다음이야. 북한은 나눠준 땅을 결국 협동농장 체제로 전환했고, 한국은 5명 10명씩 낳은 자식들과 산출물을 극대화하는 가족농 형태로 바뀌었어. 국민의 70% 이상이 농민인데 그들 모두 자기 땅에서 자기 손으로 일 하는 셈이니 얼마나 열심히 일했겠니.


산출물이 드라마틱하게 늘어나면서 초과 공급이 생기고, 이를 활용하는 협동조합이 나타나고, 거기서 다시 산출물을 증가시킬 기술을 도입하고, 농가의 인력들은 도시로 나가 산업화의 노동력으로 바뀔 준비가 되었던 셈이지. 그리고 도시에서 사업이, 취직이, 학업이 실패해도 돌아갈 농촌이 있으니 선순환이 생겼다고 한다.



2. 정부 주도의 수출 중심 제조업 산업 전환을 이뤄냈다.


기업인들을 가만히 놔두면 무슨 사업을 할까? 아마 가장 돈이 되는 사업을 할 거다. 그로 인해 창출한 부가가치가 고용과 소비로 이어지고 경제는 성장한다. 이게 바로 경제학자들이 얘기하는 야성적 충동이고,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근데 빈국에도 이런 방식이 통할까? 기반 산업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부동산, 식품 등 필수소비재 수입 등 내수 국한 산업이다. 물론 이런 산업도 필요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만 고용과 2차, 3차 후방산업 등을 생각하면 아주 소수의 오너에게만 이득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동남아의 유명한 기업들을 들어본 적이 얼마나 있니? 실제로 동남아의 대기업들은 그 지역 안에서만 대장이다.


삼성 현대 SK가 필리핀 보다 10배 가난한 시절 그들보다 늦게 창업했음에도 지금의 위치에 있는 건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미친듯한 수출 드라이브가 주요 동인이다. 주 단위로 수출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받고, 은행을 통제해서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로 돈을 퍼주고, 외국 기업들의 국내 진출에는 직간접적인 관세와 무역장벽으로 내수를 보호했다. 그렇다고 특정 기업을 선호한 건 아니다. 한 산업에서 2-3개의 기업을 육성하며 경쟁시켰다. 그리고 경쟁력이 없으면 가차 없이 정리하고 합병을 통해 통폐합시켰다.


우리는 철강 출신으로 포스코가 글로벌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지 않냐. 산업의 쌀인 철을 공정의 처음부터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지.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건 포스코나 현대가 처음부터 이런 걸 할 수 있었겠냐는 점이다. 전부 일본, 미국, 독일에서 빼앗아 온 거다. 정말로 빼앗았다고 봐도 된다. 그럴 수 있도록 국가에서 묵인하고, 도와줬다. 반면, 동남아의 많은 국가는 경제학에 어긋난다는 영미권 열강들의 압박에 그런 행동을 못했다.


난 이건 옳다 그르다의 이슈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다. 주위 열강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리더가 강하게 밀어붙였고, 다행히 그걸 받쳐 준 실행력 뛰어난 기업인들이 있었음에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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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유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인물, 사건을 바라볼 때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야 하고, 시기에 따라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존재한다. 지금 옳은 것도 언젠가는 그른 결정이었음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걸 인정하고 생각과 행동을 바꿀 줄 아는 것. 이게 진정한 유연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국내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강제하는 정책이 마치 범죄처럼 느껴지는 교육을 받아왔으나 사실 경제적 성공을 이룬 모든 나라는 성장기에 보호주의라는 죄를 저질렀다.


굉장히 아이러니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로 인한 반작용으로 과거를 청산하면서 토지를 개혁하였다. 굴욕적이고 치욕적이었지만 덕분에 아주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받아들였다. 당시 조선은 뒤쳐질 대로 뒤쳐진 나라였다. 조선이 막 개화하던 1900년대에 영국인들의 눈에는 전기와 전화기도 없는 나라에서 할 일 없이 담배만 뻑뻑 피던 남자들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선 타이타닉호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마치 고무줄의 양쪽 끝처럼 다른 나라에 비해 극단적으로 뒤처져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일제강점기 이후의 토지개혁,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야성적 충동을 가진 기업가들이 날뛰면서 반대편 고무줄의 끝으로 우리나라를 아주 빠르게 보냈다고 생각한다.


잡스가 얘기하였 듯 우리의 인생은 connecting the dots인데, 문제는 지금 찍는 점들이 어떻게 연결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오직 looking backward 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인생이다. 한 사람의 인생도 그러할진대 국가의 흥망성쇠는 어떠하겠나. 책도 결국 지나고 결과를 해석하는 것일 뿐, 그래서 앞으로 유효할지는 제시할 수도 없고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한 가지 확신하는 건 리더가 어떤 철학을 갖고 조직/회사/국가를 이끄냐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난 아직 아들딸도 없지만 진심으로 자식들을 훌륭하고 강한 대한민국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 갓 백일이 지난 귀여운 아들을 보는 너도 비슷한 마음이겠지.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구나. 다음에는 싱가포르의 존경받는 독재자 리콴유의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또 얘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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