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이 멈추는 순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묻는 삶의 진실

by Jwook

톨스토이가 1886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얇다. 하루면 다 읽힌다. 그러나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기가 어렵다. 나보코프는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완벽하다"고 했고, 모파상은 "이 작품에 비하면 내가 써온 것은 전부 헛된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죽음을 다룬 소설이 백사십 년 가까이 되살아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소설이 겨누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 제정 시대의 고위 판사다. 나쁜 사람이 아니다. 좋은 가문, 법학 공부, 때에 맞춘 결혼, 성실한 승진. 흠잡을 데 없이 올바른 순서로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문제다. 그의 삶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해야 한다고 여겨진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죽어간다.


응접실이라는 초상


이반 일리치는 새 집을 꾸미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커튼의 색깔, 가구의 배치, 벽에 걸린 그림의 위치까지. 그는 그 공간이 자신의 취향을 담은 것이라 믿었지만, 톨스토이는 짧게 덧붙인다. "그것은 사실 그 계층 사람들이 모두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이었다."


이반의 응접실은 그의 삶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공간이었다.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하고 싶은 세계의 복사본. 그리고 그 복사본을 완성하는 데 그는 생의 대부분을 썼다.


갈등을 피하고, 체면을 지키고, 기대에 부응하는 것. 그것이 그가 평생 익혀온 삶의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은 동시에 침묵의 기술이기도 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평온을 유지하고, 보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피하는 것. 침묵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지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지혜의 대가는 조용하고 느리게 청구된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나'와 등 돌린 삶. 이반의 정상성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흠잡을 데 없이, 그러나 텅 비어 있는 채로.


죽음이 묻는 것


병이 찾아왔을 때 이반은 그것조차 관리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겼다. 좋은 의사, 적절한 약, 충분한 휴식. 그러나 병은 악화되고, 의사들은 모호한 말만 반복하고, 가족들은 그의 고통보다 일상의 불편함을 더 걱정한다. 직장 동료는 그의 빈자리가 가져올 승진 기회를 조용히 계산한다.


그를 가장 깊이 흔든 것은 그들의 차가움이 아니었다. 자신 역시 평생 그들과 똑같이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또한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눈을 돌렸고, 불편한 진실은 모른 척했으며, 침묵을 지혜라 불렀다. 그 선택들이 쌓여 자기 삶의 진실을 조금씩 갉아먹어 왔다는 것을. 그것을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본다.


게라심의 자리


병상에서 이반의 시선은 하인 게라심에게 머문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많지 않은 시골 청년. 그러나 그는 이반의 고통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불평하지 않고, 거짓 위로도 하지 않는다. 단지 그 자리에 있는다. 이반의 다리를 들어 올려 편하게 해주면서 그것이 당연한 일인 듯 행동한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 수고쯤이야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반을 무너뜨린 것은 게라심의 친절이 아니었다. 체면도 없고, 계산도 없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아닌 그 존재 방식이었다. 정성껏 꾸민 응접실이 사실은 텅 빈 공간이었다는 것을, 게라심의 단순한 몸짓이 말없이 증명해버렸다. 그 순간부터 이반의 저항은 방향을 잃기 시작한다. 죽음과 싸우던 힘이 아니라, 거짓된 삶을 붙잡고 있던 힘이 빠져나가면서.


지금 여기에서


삶의 체면, 성공의 환상, 남들의 시선 위에 세워진 자기 서사. 그것들을 내려놓는 순간, 처음으로 아내와 아들이 보인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연민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직전에야 그는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변한다.


마지막 순간 이반이 보는 빛은 종교적 위안이 아니다. 자기기만에서 깨어난 인간이 맞이하는 투명한 순간. 더 이상 아무것도 꾸밀 필요가 없어진 자리에서 비로소 느끼는 가벼움이다. 우리는 그 가벼움을 죽음 앞에서야 경험할 필요가 없다. 다만 지금, 한 가지만 물어볼 수 있다면 이것이다. 당신이 매일 출근하는 그 자리, 당신이 유지하는 그 관계, 당신이 지켜온 그 체면. 그것이 정말로 당신에게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먼저 만들어놓은 응접실을 당신이 열심히 채워온 것인지.


당신이 평생 꾸며온 그 응접실에서, 당신은 편안한가.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