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선택한 사람들

『스토너』와 용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하여

by Jwook

특별하다고 믿는 마음, 초라하다고 확인되는 현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 감각이 없다면 반복되는 하루와 누적되는 시간을 견뎌낼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아무나가 아니다"라는 믿음은 허영이기보다는,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존엄에 가깝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확인되는 나의 위치는 대개 초라하다. 대체 가능하고, 평균적이며, 내가 빠져도 시스템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우리는 이 특별함과 초라함의 간극을 어느 지점에서 봉합하며 살아간다. 아주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의미한 인생은 아니라는 식의 자기 합리화. 이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는 바로 이 봉합 지점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흔든다.


전쟁에 가지 않겠다는 판단, 그리고 말로 정리되지 않는 감정


소설 초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주변의 동료와 친구들은 전쟁터로 떠나고,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죽는다. 스토너는 남는다.


전쟁에 가지 않겠다는 스토너의 선택은, 바로 이 '특별함'의 감각이 무너지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모두가 떠나는 와중에 혼자 남는다는 것은, 자신이 평범하고 대체 가능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 선택은 정치적 선언도, 영웅적인 거부도 아니다. 그는 단지 가지 않겠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 판단 안에는 너무 인간적인 감정들이 섞여 있다. 나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모두가 '당연히 가야 한다'고 말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는 자의식,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괴감. 소설은 이 감정을 정리해주지 않는다. 정당화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대로 두고 독자에게 넘긴다.


이 지점에서 『스토너』는 불편하다. 우리는 선택을 언제나 도덕의 언어로 재단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용기를 미덕으로 만들 때, 선택은 폭력이 된다


전쟁에 가지 않은 스토너를 둘러싼 시선들은, 용기를 집단적 미덕으로 강제하는 사회의 압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사회가 용기를 미덕으로 제도화하는 순간 발생한다. 그때부터 용기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갈등이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옳은 것과 옳은 것' 사이에서 벌어진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옳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옳다. 전쟁터로 나가는 것도 옳고, 대학에 남아 학문을 이어가는 것도 옳다.


그런데 우리는 이 중 하나만을 '더 옳은 것'으로 만들려 한다. 그 순간,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강요가 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용기를 내야 하고, 같은 위치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결함 있는 사람처럼 취급받는다.


직장에서도, 관계에서도, 우리는 이런 순간을 마주한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것도 옳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것도 옳다. 그런데 누군가는 반드시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싸우지 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른다.


이것은 건강한 연대가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판단을 유예한 채 남겨진 삶의 흔적


『스토너』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태도는 분명하다. 판단을 유예하는 것. 소설은 스토너를 영웅으로 만들지도, 비겁자로 낙인찍지도 않는다. 대신 한 가지 사실만을 남긴다. 행동하지 않기로 한 선택 역시, 삶의 흔적을 남긴다는 점이다.


스토너는 전쟁에 나가지 않았지만, 그 선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도 못한다. 설명되지 않는 고립감, 애매한 죄책감, 말로 정리되지 않는 거리감이 그의 삶에 남는다. 소설은 위로하지도, 면죄부를 주지도 않는다. 다만 조용히 보여준다. 선택에는 언제나 감당해야 할 몫이 있으며, 그 몫은 각자의 삶 속에서 조용히 처리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스토너』는 고전이라 부르기엔 애매하다. 거대한 상징도, 선언도, 시대를 관통하는 구호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소설은 분명 고전처럼 작동한다. 개인의 감정과 내면, 선택과 좌절, 인내와 감내라는 인간 보편의 정서를 정직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다시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의 우리는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음은 정말 비겁함인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식인가. 스토너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전쟁은 끝났으며, 그의 삶은 계속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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