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선택하는 관계의 윤리
나는 오랫동안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을 구분하지 못했다. 두근거리면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익숙해지면 식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연애들은 서툴고 어설펐다. 감정의 이름도 제대로 붙이지 못한 채, 관계 안에서 길을 잃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설픔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틀렸던 적이 있어서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잘못 읽었던 감정들이 있어서 지금은 조금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그렇게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정이 아니라 경험으로, 설레임이 아니라 실수로.
나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애쓴다. 작은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 시기의 사랑은 강렬하다. 감정은 선명하고 상대는 특별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집중은 사라진다. 익숙함이 자리를 대신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당연함으로 바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묻게 된다. "왜 예전 같지 않을까."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 2016)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에든버러에 사는 평범한 부부 라비와 커스틴의 수십 년을 따라가며, 작가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낭만의 한계와 결혼 제도의 모순을 넘어 성숙한 사랑으로 도약하기 위한 솔직하고 대담한 논의를 펼친다.
사랑이 식었다고 느끼는 순간, 사실은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 바뀐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변화를 실패로 오해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때 이미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영화와 소설, 수많은 문화가 만들어낸 서사. 사랑은 완벽해야 하고, 상대는 나를 이해해야 하며, 갈등은 없어야 한다는 믿음. 이 믿음은 관계를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계를 무너뜨리는 기준이 된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다.
라비와 커스틴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으며,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드 보통은 말한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낭만의 서사가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사랑의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그렇기에 드 보통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해석이고 인내이며, 반복되는 실망 속에서도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사랑하지 않기로 하는 선택은 어떤 모습인가. 그것은 대개 말 없이 시작된다. 더 이상 감정을 주장하지 않는 것, 고백을 거두는 것, 상대를 붙잡지 않는 것. 그 침묵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 2005)에는 그 침묵을 평생 살아낸 인물이 있다. 사려 깊고 총명한 캐시는 감정 표현에 서툰 토미를 돌봐주고 토미 역시 그런 캐시를 아끼지만, 적극적인 루스가 먼저 고백을 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캐시는 토미를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을 오랫동안 말하지 않는다. 루스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캐시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물러섰다.
캐시의 침묵은 사랑을 거두는 선택이 아니었다. 사랑을 주장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었다. 캐시와 토미는 태어날 때부터 삶의 목적이 정해진 존재들이었다. 인간의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복제된 그들에게, 사랑을 요구할 자유는 처음부터 온전히 주어지지 않았다. 캐시의 침묵은 존재의 경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훗날 토미는 노퍽의 한 소품 가게에서 캐시가 오래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카세트테이프를 찾아 건네준다. 그 테이프는 이후 캐시에게 한때 서로 사랑의 감정을 가졌던 토미와의 추억으로 평생 기억된다. 말하지 않은 감정이 사물을 통해 조용히 건너온 것이다. 캐시는 고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우지도 않았다.
폭발하는 감정이나 격한 대사 없이 담담하고 아름답게 슬픈 이 소설이 남기는 것은, 침묵이 때로는 사랑의 다른 문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 자신의 감정보다 관계의 결을 먼저 읽는 것.
라비와 커스틴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들은 관계를 유지했다. 갈등 속에서도 버텼고, 서로를 오해하면서도 곁에 있었다. 그것은 용기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안정과 모험이라는 정반대 방향의 두 욕망 사이에서, 우리의 낭만적인 삶은 슬프고 불완전하게 끝날 운명을 품고 있다.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반드시 사랑을 지속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불편한 사실을, 드 보통의 소설은 조용히 암시한다.
캐시는 달랐다. 그녀는 관계를 유지하는 대신 감정을 침묵 속에 놓아두었다. 그 침묵은 회피가 아니었다. 캐시는 상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잃은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선택했다. 루스를 잃고, 토미를 잃고, 헤일셤을 잃으면서도 그녀는 각각의 것들을 끝까지 기억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내보낸 것들을 지워버리지는 않았다.
라비는 관계를 유지하는 침묵 속에 있었고, 캐시는 감정을 주장하지 않는 침묵 속에 있었다. 두 침묵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 어딘가에, 우리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사랑의 형태가 있는지도 모른다.
드 보통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것이다. 사랑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자유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랑을 멈출 자유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관계를 끝내는 것은 종종 이기적인 선택으로 여겨지고, 남겨진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억지로 유지되는 관계가 서로를 온전하게 지켜주는지,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가. 진실하지 않은 감정으로 채워진 시간이 침묵보다 덜 상처를 남긴다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가. 사랑하지 않을 자유는 무책임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존중하는 방식 — 적어도,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 — 을 품고 있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며,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고,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드 보통이 말하는 성숙은 끝까지 붙드는 것만이 아니라, 내려놓을 때를 아는 것도 포함하는 것은 아닐까.
침묵이 방관으로 읽히는 사회에서, 사랑하지 않기로 한 침묵은 더욱 오해받는다. 그것은 비겁함으로, 회피로, 때로는 배신으로 읽힌다. 그러나 캐시의 침묵이 그랬듯, 어떤 침묵은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형태의 사랑일 수 있다. 말하지 않았지만 잊지 않은 것. 붙잡지 않았지만, 내보낸 후에도 지우지 않은 것.
우리는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도, 어쩌면 같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알랭 드 보통과 가즈오 이시구로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당신은 지금 사랑을 계속하고 있는가, 아니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침묵은 — 회피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나는 지금도 내가 겪었던 연애들을 가끔 꺼내본다. 그것들이 서툴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서툶 속에서도 감정에 충실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쩌면 사랑을 배운다는 것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침묵을 선택해왔는지를 — 조금씩, 천천히 —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