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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홈, 사유의 리듬

뇌의 흔적에서 들뢰즈의 흐름으로

by Jwook
기억과 사유는 언제나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유연한지가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지를 결정한다.

기억은 파이는 것이다

기억은 '남는 것'이 아니라 '파이는 것'이다. 감정이 얽힌 순간은 뇌 속에 물리적 홈을 새긴다. 그 홈의 깊이와 유연함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결정한다.


뇌과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짧게 머무는 기억과 오래 남는 기억의 차이는 물리적이다. 방금 들은 전화번호는 몇 분이면 사라지지만, 첫사랑의 얼굴은 수십 년이 지나도 선명하다.


왜일까? 강한 감정이나 반복된 경험은 뇌세포 사이의 연결을 실제로 변형시킨다. 마치 산길을 반복해서 걸으면 땅에 길이 나는 것처럼, 자주 떠올리거나 강렬했던 기억은 뇌에 깊은 길을 만든다. 이것이 '홈'이다.


흥미로운 건 감정의 힘이다. 두려움이나 기쁨 같은 강한 감정은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을 분비시키고, 이 호르몬이 기억을 더 깊이 새긴다.


그래서 사고가 날 뻔했던 순간의 신호등 색깔, 프러포즈 받던 날의 날씨, 면접 대기실의 시계 소리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감정이 주변의 모든 것을 함께 기록하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기억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은 살짝 흔들린다. 이 순간 새로운 정보가 섞이거나 일부가 수정된다. 그래서 똑같은 추억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달라진다.


아픈 기억이 무뎌지고, 평범했던 순간이 아름답게 미화되는 이유다. 홈은 한 번 파이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다시 파이는 것이다.


홈 패인 공간, 매끄러운 공간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세상을 두 가지 공간으로 나눴다. '홈 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 쉽게 말하면 이렇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 – 1995)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로, ‘차이와 반복’(1968), ‘천 개의 고원’(1980, 펠릭스 가타리와 공저)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계를 완성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연결되는 운동 그 자체로 이해했으며, 철학·문학·예술·건축·영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의 개념이 인용될 만큼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출처: 위키피디아

홈 패인 공간은 도로명 주소가 있는 도시 같은 곳이다. 바둑판처럼 구획되어 있고, 신호등이 있으며, 정해진 규칙이 있다. 우리가 매일 다니는 출퇴근길,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일상, 정해진 자리가 있는 사무실. 이런 공간은 예측 가능하고 안전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특정한 패턴 안에 가둔다.


반면 매끄러운 공간은 사막이나 바다 같은 곳이다. 정해진 길이 없고,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며, 매번 다른 경로를 만들 수 있다. 낯선 도시를 지도 없이 걷는 것, 즉흥 연주를 하는 것, 정답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 이런 공간은 불안하지만 자유롭고, 예측할 수 없지만 창의적이다.


중요한 건 이 두 공간이 서로 변한다는 점이다. 유목민이 다니던 초원에 도로가 생기면 홈 패인 공간이 되고, 폭설로 도시가 마비되면 일시적으로 매끄러운 공간이 된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학습을 통해 새로운 습관을 만들면 홈이 파이고, 낯선 경험을 하면 기존의 홈이 흐트러진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를 연구한 결과가 있다. 그들은 문제를 풀 때 먼저 기존의 사고 패턴을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만든다. 마치 꽉 쥔 주먹을 펴듯, 뇌의 긴장을 풀어 새로운 연결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홈을 지우지는 않되, 잠시 흐릿하게 만드는 능력. 이것이 창의성의 비밀이다.


일상 속 홈과 흐름

도시를 다시 걷기 우리는 보통 목적지를 정하고 최단 경로로 걷는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가끔 일부러 길을 잃어보면 어떨까?


파리의 예술가들이 시도한 '표류'라는 놀이가 있다. 목적지 없이, 지도 없이, 그저 발길이 끌리는 대로 도시를 걷는 것. 신기하게도 이렇게 걸을 때 뇌는 평소와 다르게 작동한다.


GPS를 쓸 때는 잠들어 있던 공간 감각이 깨어나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뇌가 활발히 움직인다. 익숙한 동네도 한 블록만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처음 보는 간판, 낯선 골목, 몰랐던 카페. 도시는 그대로인데 우리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다.

사진: Unsplash의ben o'bro

음악의 떨림 피아노는 정확한 음을 낸다. 도는 도, 레는 레. 하지만 바이올린이나 색소폰은 음 사이를 미끄러질 수 있다.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줄을 구부려 음을 휘게 하는 것, 판소리 명창이 음을 떨면서 꺾는 것. 이런 '정확하지 않은' 소리가 오히려 우리 마음을 울린다.


왜일까? 우리 뇌는 예상과 다른 자극을 만나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정확한 음높이에서 살짝 벗어난 소리는 긴장과 해소를 만들고, 이것이 감정을 자극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수 안에 숨은 음악이 있다"고 했다. 홈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오히려 예술이 되는 것이다.


몸의 기억 현대인의 몸은 너무 많은 홈에 갇혀 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은 자세, 스마트폰을 보는 목의 각도, 마우스를 쥐는 손의 모양. 이런 반복이 근육과 관절에 특정한 패턴을 새긴다. 그래서 어깨가 굳고 허리가 아픈 것이다.


요가나 스트레칭이 도움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평소와 다른 움직임은 굳은 근육의 패턴을 풀어준다. 특히 오른손잡이가 가끔 왼손으로 양치질하거나 글씨를 쓰면 뇌가 새로운 회로를 만든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이 어색함이 바로 변화의 신호다. 몸의 홈을 조금씩 넓히는 것이다.


병리와 창조 사이

알츠하이머병의 잔혹함은 단순한 기억 상실이 아니다. 이 병에 걸리면 새로운 홈을 팔 수 없게 된다. 오늘 만난 사람을 내일 기억하지 못하고, 방금 한 대화를 잊어버린다. 과거의 홈에만 갇혀 1960년대를 살아가는 할머니, 이미 세상을 떠난 배우자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그들에게 현재는 너무 매끄러워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모든 것이 의미를 갖는 병도 있다. 길에서 마주친 빨간 차가 모두 메시지로 느껴지고, TV 속 앵커가 자신을 감시한다고 믿는 것. 이것은 홈 없이 너무 매끄러운 상태다. 모든 것이 연결되지만 안정된 의미가 없어 세계가 무너진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춤을 춘다. 너무 깊은 홈에 갇히지도 않고, 완전히 매끄러운 혼돈에 빠지지도 않는다. 피카소는 "규칙을 배워라. 그래야 예술가처럼 깰 수 있다"고 했다. 먼저 홈을 만들고, 그다음 그것을 넘어서는 것. 이것이 창조의 리듬이다.

출처: DALL·E by OpenAI

파이고 흐르는 존재

트라우마 치료에 쓰이는 흥미로운 방법이 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면서 눈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다. 눈 운동이 기억을 다시 처리하는 과정에 개입해, 감정의 무게를 덜어낸다. 깊이 파인 홈도 다시 팔 수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매일 홈을 파면서 동시에 그 홈을 넘어 흐른다. 매일 같은 커피를 마시지만 어느 날 다른 메뉴를 시도한다. 출퇴근 루틴은 삶을 안정시키지만, 가끔 다른 길로 가면 도시가 새롭게 보인다. 모국어로 생각하지만, 외국어를 배우면 세계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모든 습관은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습관 없이는 매일이 혼돈이 된다. 문제는 홈 자체가 아니라 홈이 너무 깊어 빠져나올 수 없을 때다.


건강한 삶은 홈과 흐름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안정된 일상을 유지하되, 가끔 낯선 경험에 자신을 열어두는 것. 깊이 공부하되, 다른 분야도 기웃거리는 것. 오래된 친구를 소중히 하되, 새로운 만남도 환영하는 것.


가장 깊은 홈조차 영원하지 않다. 평생 쓴 오른손을 다치면 왼손이 발달하고, 외국에 오래 살면 꿈의 언어가 바뀌며, 사별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색깔을 띤다. 홈은 운명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우리는 반복으로 기억하고 변주로 사유한다. 깊이 파인 홈일수록 많은 물이 흐를 수 있듯, 강한 기억일수록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홈의 깊이가 아니라 그 홈에 흐르는 물의 방향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기억의 홈과 경험의 흐름 사이에서, 우리는 매순간 다른 리듬으로 살아간다. 어제와 같으면서도 다르고,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그 미묘한 진동이 만드는 고유한 패턴이 바로 각자의 삶이다.


홈을 파되 갇히지 않기. 흐르되 흩어지지 않기. 이것이 우리가 매일 연습하는 존재의 기술이다.

사진: Unsplash의NEOM

이 글은 들뢰즈의 사유를 빌려, 삶을 반복과 변주의 리듬으로 본다. 기억은 매일 조금씩 다시 새겨지고, 감정은 그 위를 흘러가며 새로운 흔적을 남긴다. 삶은 폭발이 아닌, 미세한 차이의 축적 속에서 서서히 생성되는 과정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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