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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기억하는 공간

메를로퐁티와 피터 줌토르의 감각

by Jwook
몸은 공간을 지나치지 않는다.
돌의 온도와 공기의 냄새가 피부에 남는다.
피터 줌토르의 건축은,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la chair)’처럼 몸의 기억으로 완성된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온도가 미묘하게 변하고, 돌과 물의 냄새가 코끝에 스친다.

햇빛은 천장의 틈을 따라 어두운 물속으로 흘러내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내 몸이 세계와 닿아 있음을 느낀다.


피터 줌토르의 건축은 보는 공간이 아니라 느끼는 공간이다.

그의 건물은 눈으로 읽히지 않고, 피부로 기억된다.


메를로퐁티 — 세계를 만지는 몸

메를로퐁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말했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 만지는 자와 만져지는 자는 서로 얽혀 있다."

그에게 몸은 단순한 껍질이 아니라 지각의 살(la chair)이다.


세계는 멀리 떨어진 대상이 아니라, 내 몸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다.

공간을 '본다'는 건 결국 '만지는' 일이다.


시선은 돌 벽을 따라 미끄러지고, 그 질감과 습도는 나를 만진다.
이것이 메를로퐁티가 말한 가역성(reversibility)이다.

내가 세계를 지각하는 순간, 세계 또한 나를 지각한다.
손이 책상을 만질 때 손 또한 만져지듯, 건축은 몸과 세계가 서로를 감각하는 교차점이 된다.

피터 줌토르 — 감각으로 짓는 건축

피터 줌토르는 빛보다 온도를, 형태보다 질감을 짓는다.
그의 발스 온천장(Therme Vals)에 들어서면 공간은 시선이 아닌 몸의 표면으로 읽힌다.

출처: Therme Vals Official Website (vals.ch)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 1943~)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로, 재료의 질감과 감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분위기의 건축(Atmospheres)’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 브루더 클라우스 예배당(Bruder Klaus Field Chapel, 2007), 발스 온천장(Therme Vals, 1996)이 있으며, 2009년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했다.
그의 건축은 형태보다 감각·기억·시간의 경험을 중시하며, “건축은 인간의 감각을 깨우는 예술”이라는 철학으로 요약된다.
출처: Therme Vals Official Website (vals.ch)

스위스 규암을 얇게 잘라 켜켜이 쌓아 올린 벽은 물의 유동적인 표면과 만나며 원초적인 동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따뜻한 물에 잠긴 몸은 중력을 잠시 잊고, 돌 벽에서 퍼져 나오는 습한 공기와 거친 질감을 피부로 기억한다.

출처: Therme Vals Official Website (vals.ch)

천장의 좁은 틈으로 들어온 빛줄기는 어두운 물에 반사되어 춤추고, 그 공명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깨어난다.
공간이 나를 만지는 순간, 나는 물과 돌, 빛과 어둠이 얽힌 세계의 일부가 된다.


줌토르는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건물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를 원한다. 그것도 감정적으로."

출처: Therme Vals Official Website (vals.ch)

그 감동은 눈이 아닌 몸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재료의 무게, 공기의 밀도, 빛의 온도 — 이 모든 것이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출처: Therme Vals Official Website (vals.ch)

공(空)의 건축 — 비움이 아닌 감각의 채움

불교의 '공(空)'은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 있는 여백이다.


줌토르의 건축도 그렇다.

공간은 비어 있지만 안에는 물, 공기, 냄새, 소리, 기억이 쌓인다.

그 비움은 텅 빈 상태가 아니라 감각으로 채워지는 여백이다.


메를로퐁티의 '살'불교의 '공'이 줌토르의 건축 안에서 손에 잡히는 형태를 얻는다.
몸과 공간, 감각과 사유가 하나로 맞닿는다.


벽과 벽 사이의 틈, 물과 돌 사이의 경계 — 그곳에서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관계 맺는 흐름임이 드러난다.

출처: Google 이미지 생성 모델 (Gemini)

도시의 무감각, 그리고 회복의 가능성

현대 도시는 점점 감각을 잃어간다.
냄새는 인공적으로 걸러지고,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빛은 더 이상 시간의 변화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 속에서 우리의 몸은 세계와의 접촉 면적을 잃는다.

줌토르의 건축은 그 단절을 되돌린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발스 온천장의 돌은 기계로 정밀하게 절단되었고, 조명은 현대 기술로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감각의 언어로 번역하는 태도다.

도시 전체를 발스처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

이 재료는 어떤 온도를 가지는가?

이 공간은 몸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이 빛은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가?

감각의 회복은 건축가만의 과제가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는 모든 이의 윤리가 된다.

출처: Google 이미지 생성 모델 (Gemini)

감각의 윤리로서의 건축

줌토르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몸은 지금, 세계를 느끼고 있습니까?"


그의 공간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물의 표면과 돌의 무게로 말한다.


감각은 기억이고, 기억은 존재의 가장 오래된 흔적이다.

메를로퐁티의 철학이 몸의 사유라면, 줌토르의 건축은 그 사유의 공간적 실천이다.


둘 다 같은 것을 향해 손을 뻗는다 — 세계와 몸이 분리되지 않은 채로 서로를 감각하는 순간.


결국 건축이란, 우리가 느끼게 만드는 일이다.
그 느낌 속에서 우리는 세상과 하나의 살이 된다.


돌의 표면에는 시간이 남아 있다. 빛은 그 위를 따라 이동하며 공간의 결을 드러낸다. 몸은 그 결을 감지하고, 감각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다.
이때 공간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몸과 세계가 서로를 인식하는 장, 그 사이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그 인식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우리가 머무는 일상의 자리에서도, 공간은 여전히 우리를 감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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