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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Apr 22. 2020

글을 잘 쓰고 싶다고요?

설명, 진술, 묘사, 은유, 생각

지난 9년 동안 여섯 권의 책을 저술하고, 여덟 권의 책을 편집했습니다. 그리 많은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업 작가도 아니고 또 전업 편집자도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짜투리 시간을 사용하면서 적지 않은 글을 써온 것 같습니다. 꽤 괜찮은 생산력이지요. 대수롭지는 않지만 상도 몇 번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쓰거나 편집할 계획입니다. 작가로서 혹은 편집자로서 이제 막 시작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글을 쓰고 만진다는 게 즐겁고 보람이 있으며 뒤늦게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깨달았다는 정도입니다. 앞길이 멉니다.


기능이나 기예 관점에서 글은 설명, 진술, 묘사, 그리고 메타포(은유)로 이루어집니다. 이 네 가지 기능 요소를 잘 사용하면 꽤 괜찮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제 나름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걸 간단히 소개합니다.



첫 번째, 설명


설명은 가장 흔하고 기본적인 글쓰기 기능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설명하는 투로 글을 씁니다. 어떤 정보와 지식을 전할 때 설명만큼 보편적인 방법은 없지요.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때뿐만 아니라 자기의 기분을 타인에게 이해해 달라는 목적으로 전하거나 어떤 주장을 하면서 타인을 설득할 때에도 설명이라는 방식의 글쓰기를 합니다. 적당한 논리가 필요합니다. 인과관계를 민감하게 생각해서 원인과 결과가 순서대로 잘 이어져야 하며, 문장과 문장 사이사이가 촘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설명의 주도권을 '화자'(저자)가 아닌 '청자'(독자)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없는 설명만큼 공허한 게 있을까요? 전적으로 독자의 관점에서 글이 쓰여야 합니다.


독자의 관점보다는 자기 관점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도 물론 있어요. 문학하는 작가입니다. 작가에게 설명 방식의 글쓰기는 지루하고 비루합니다. 그래서 시는 설명이 없는 세계입니다. 소설의 경우에는 더 많은 문장이 들어있으므로 가끔 설명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 등장하는 소품에 불과할 따름이지요.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작가라거나 자기 생각과 주장으로 세상을 설득하려는 작가라면 설명의 방식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글을 씁니다.



독자의 관점으로, 타인이 자기 글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알아듣기 쉽게 씁니다. 우선 단어 선택을 주의하겠지요. 복잡한 문장을 피할 거예요. 그럼에도 항상 의심해야 합니다. "독자가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전달될 수 있을까?"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씁니다.


디테일은 깊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면 되겠지"라며 적당히 타협하더군요. 귀찮아서 그런 겁니다. 귀찮아 하지 마세요.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세요. 당신이 만든 깊이에 독자가 빠져든 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는 거예요. "God is in the details."



두 번째, 진술


진술은 설명과 비슷한 글쓰기 기법입니다. 어떤 생각을 타인에게 전한다는 점에서는 설명과 진술이 같습니다. 그러나 설명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타인"이 주도권을 갖고 있습니다. 듣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관점으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술은 글을 쓰는 "본인"이 주도권을 쥡니다. 자기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명의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할 수도 있으므로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어설프게 생각하면 안 돼요. 자기 이야기라고 모든 게 진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자기 생각을 타인이 이해하도록 ‘전달'하려는 목적의 글이라면 그건 진술이 아니라 설명이 됩니다. 이와 달리 자기의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심정'이나 '감각'을 글로 표현하는 방식이 진술이 되겠습니다.


시인은 - 그/그녀가 아마추어가 아니라면 - 설명 방식으로 시를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술 방식으로는 훌륭한 시를 쓰지요. 진술이란 본인이 주도권을 주는 방식의 글쓰기 기법이기 때문입니다.


진술에서 타인의 이해는 덜 중요합니다. 논리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경험과 지식보다는 자기의 체험이 먼저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자유로운 글쓰기 방식은 아니에요. 적어도 개연성은 있어야 합니다. 진술로 쓰인 글을 읽으면서 타인이 공감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설명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이라면 진술에 도움이 돼요. 자세하게 표현되면 재미있고 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솔직함"입니다. 진정성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이게 없으면 진술의 개연성이 사라져버립니다. 독자는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작위적이네. 가공되었어. 가식적이야. 거짓말이군. 독자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최악의 진술이 되고 맙니다. 진술하는 마음에 꾸밈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군요.





세 번째, 묘사


진정한 글쟁이의 재능과 매력은 묘사에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설명과 진술만으로도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훌륭한 블로거가 될 수 있으며, 자기계발서, 경제경영, 인문사회 분야의 저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작가, 예를 들어 문학작가가 된다거나 탁월한 에세이를 쓰는 작가가 되려면 묘사에도 능해야 합니다. 묘사야말로 소수 글쟁이의 권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사는 그림 그리듯이 사물, 상황, 심리를 자세히 표현하는 글쓰기 기법입니다. 묘사를 잘하면 글이 삽니다. 글은 그다지 시각적이지 않잖아요. 우리의 모든 감각 중에서 시각이 가장 원초적이어서 가장 확실하고 빠르며 명확하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이해합니다. 무엇인가를 전할 때에는 글보다는 사진이나 그림이 더 낫다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묘사는 글로도 사진이나 그림처럼 이미지를 멋지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눈부신 장점이에요.


묘사는 선명해야 합니다. 묘사를 하려는 대상의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도록 글을 써야 합니다. 선명하지 않은 묘사는 쓸모없습니다. 언어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선명하게 떠오르지 못하는 묘사라면, 그런 기교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설명하시고 진술하세요.



묘사는 두 가지 점에서 어렵지요. 묘사를 하려면 '집중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묘사하려는 대상을 관찰하는 데 필요한 집중된 시간, 그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데 소요되는 집중된 시간을 말해요. 그 시간을 확보해서 인내력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분주한 시대에는 참 어려운 기법이지요. 19세기 작가들의 작품을 보세요. 묘사가 넘칩니다. 그 시절에는 시계가 느리게 갔으니까요. 21세기에서는 시간이 째깍째깍 엄청 빨리 흐르기 때문에 옛날과는 다릅니다. 묘사의 두 번째 어려운 지점은 '어휘력'입니다.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단어와 표현이 반복되면 글맛이 떨어지고 일단 떨어진 글맛은 묘사가 다시 살려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묘사를 잘하려면 평소 어휘력을 늘려놓든가, 아니면 항상 습관적으로 사전을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네번째, 메타포


모든 비유 중의 최고의 비유는 은유(Metaphor)입니다. 은유가 글쓰기의 꽃이지요. 꽃 중의 꽃입니다. 글을 쓰면서 은유에 성공한다면 100쪽 분량의 글을 한 줄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효과적이며 경제적이며 호소력이 있는 기법입니다. 제법 자기가 글을 잘 쓴다고 '젠체하는' 수많은 사람이 은유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실패합니다. 실패한 은유는 글 전체를 유치하게 혹은 진부하게 만들고 맙니다. 일부 극소수의 작가만이 그런 실패에서 벗어나 있지요. 그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패할 만한 은유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직유법, 의인법, 과장법 등등의 비유법도 있습니다만, 그런 비유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글이 알아서 자기에게 맞는 그런 비유법을 불러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비유기법이 떠오르고 작가는 그냥 그걸 받아적는 겁니다.


은유는 다릅니다. 이건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냅니다. 글이 은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고, 작가가 문장을 빛내고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은유를 가공해내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제껏 설명한 설명, 진술, 묘사 등의 기법에서는 타인의 표현을 모방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언어의 본질은 '공통성'에 있는 것이지 '고유성(유니크함)'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유는 예외입니다. 그것의 본질은 고유성입니다.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은유에서 표절은 불가합니다. 그런데 독창적으로 은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까 메타포(은유)는 함부로 쓸 게 못됩니다. 유혹이 있어도 버려야 합니다.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탐색하십시오. 이게 과연 최고의 비유일까 의문이 들면 버리십시오. 차라리 과장하고 차라리 직유법으로 표현하는 게 낫습니다. 따라서 은유 기법은 다음의 원칙으로 사용합니다.




간단하게 글을 쓸 때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네 가지 기법을 설명했습니다. 이 네 가지를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이라면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가진 작가이겠지요. 이중 어느 하나의 기법만 출중해도 훌륭한 작가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기예로 글을 썼다고 해서 그게 다 좋은 글은 아니지요. 기교는 탁월한데 읽고 싶지 않은 글도 많습니다. 저는 던져버리곤 하지요. 그 글에 담긴 생각이 보잘것없으면 읽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화려한 영상을 보는 게 더 좋으니까요. 기예만 놓고 비교하자면, 영상이 글보다 더 재미있고 즐길 맛이 나거든요.


좋은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글은 좋은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담을 게 없는데 그릇만 화려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좋은 생각이 담긴 타인의 글을 더 멋지게 편집하는 것, 그런 일을 더 많이 해내는 것, 그것이 제가 펼쳐내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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