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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Aug 05. 2021

원수를 사랑하라,
철학자 칸트의 성경 해석

52. 종교인들에게도 철학이 필요한 이유

여러분도 다 알고 계시듯이

기독교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Love your enemy.


크리스천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로’ 원수를 사랑하십니까?

크리스천은 말 그대로 ‘예수쟁이’이니까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가르침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독교 사회의 역사를 잠시라도 공부해 보면,

아니,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니 당최 불가능한 게 아닐까요?

예수께서는 어째서 이런 불가능한 명령을 하신 걸까요?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솔직히 저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사랑’을 감정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마음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채굴하는 일이었습니다.

감정은 항상 성향이나 취향의 문제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우선 우리들 마음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이 생길 리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 머리를 

임마누엘 칸트가 망치로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적으로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겁니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 속담 중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잖습니까?


마음속으로는 밉지만

행동으로는 떡 하나 더 주는 겁니다.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원수가 굶주리면 먹을 걸 주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마실 것을 주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행동할 게 없으면 의무도 없겠지요)


미운 사람을 감정적으로 사랑하라는 건 명령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운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뭔가를 나눠주는 행동은

명령될 수 있다고, 칸트는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칸트철학에 따르면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의지를 낳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그 사랑은

결국 “이성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시는 모든 크리스천에게는

철학적 축복이 되겠지요.


5분 영상으로 요약했습니다.

즐겁게 봐 주세요.


https://youtu.be/9LXiAfIybWE


코디정의 웹사이트는 http://www.codyjeong.com에 많이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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