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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2. 2018

중년의에세이1_관상

내 관상에 깃든 역사

중학생 시절의 일이다. 얼굴이 반반하고 부티가 나는 친구가 있었다. 오래전 일이어서 이제는 그 친구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내게 한 말은 여전히 또렷하다. 우리 반에 참 못생긴 아이가 두 명이 있는데, 그중의 한 명이 나라는 것이었다. 지나가면서 한 이야기이지만 자못 진지한 얼굴이어서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함께 거론된 다른 녀석은 내가 봐도 정말 못생겼기 때문에 이건 심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까지 내 외모에 대해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쁜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고 때때로 더 나쁜 기억을 만들곤 한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심각한 얼굴로 어머니에게, ‘엄마, 나 정말 못생겼어? 친구가 말하는데 내가 우리 반에서 가장 못 생겼대.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당시는 어머니나 나나 힘든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바람난 남편과 집 나간 두 아들 때문에 힘든 중년을 보내고 있었다. 집에 딱히 수입이 없었으므로 학교 납부금을 낼 수도 없었다. 교무실에 불려 가기 일쑤였던 나는 무척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다. 내 얼굴이 바로 그 증거였다. 나는 그 증거를 제 어미에게 제시하면서 추궁했던 것이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마는 넓고 광대뼈가 나왔다. 두 귀와 앞니는 왜 그리 성급하게 앞을 향해 있는지 모르겠다. 눈꼬리는 위를 향하고 눈썹은 성의 없이 그리다 말았다. 코는 장화처럼 생겼으며 심지어 곱슬머리에다 키도 작다. 나는 이런 모습을 하면서 쉽지 않았던 80년대 사춘기를 보냈다. 청년이 돼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동명이인의 영화배우 탓에 내 이름을 듣고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을 감내해야 했다. 그 배우가 매장 안으로 들어오면 얼굴 뒤에서 후광이 생긴다는 것이고 또 매장 안이 환해진다는 것이다. 의류 브랜드 회사에서 매니저로 근무했던 고등학교 단짝 친구의 말이다. 그래 그는 멋지다. 그게 바로 그의 이름값이다. 그는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 말을 걸어보는 그 어려운 일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을 것이다. 말을 더듬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가난하고 못생긴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왔다. 우선 내세울 외모가 없으므로 그저 내게 주어진 과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얼굴에 마음까지 추해서야 되겠느냐며 다짐하기도 했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보다는 사람의 속내를 중시하는 습관이 은근하게 배었다. 무엇보다 내 외모가 빛나지 않으므로 나와 마주 보는 사람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듯싶었다. 이건 정말 잘생긴 사람은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장점이다. 사람들은 내게 쉽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며 고민을 이야기한다. 나는 마치 내 일처럼 얼굴 근육에 변화를 줘가며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고 경청한다. 내가 하는 일의 상당수는 고객과의 상담이고 신뢰가 자산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꽤 적당한 얼굴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내 외모와 이름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어쨌든 간에 사람들은 나를 잘 잊지 않았다. 인간관계가 나뭇가지처럼 자랐다.  


나이 서른 즈음에 황지우 시인의 “늙은 아내에게”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최선을 다해서 늙자’라는 표현을 보고 나는 잠시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흔히 젊음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어차피 늙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늙는 편이 훨씬 맞는 말 같았다. 나는 그 후로 좀 더 예쁘고 좀 더 아름답게 늙어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그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그럴 때마다 편안한 근육과 주름이 얼굴에 생겼다. 내가 여전히 못생겼다는 사실에는 저항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내 얼굴에는 카메라가 잡을 수 없는 관상이 있다. 그 관상은 착하게 살자고 다짐했던 햇살을 받은 역사가 있다. 사람들은 내 얼굴 어딘가에 닻을 내릴 것이다. 생긴 대로 산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얼굴이 곧 좋은 접대이다. 


(월간에세이 2013년 1월 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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