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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2. 2018

중년의편지1_주례사

주례사

모년 모월 모일의 일입니다. 종로 안국동 <로마네 꽁띠>라는 카페에서 신랑과 신부와 저는 만났습니다. 우리는 붉은 와인을 마셨습니다. 모두 직업이 같아서 통하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때 신랑과 신부가 제게 이 결혼의 주례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아직 젊고 흰머리보다 검은 머리가 더 많은지라 웃으면서 사양을 했습니다. 양가 부모님께 실례가 될까 우려했습니다. 그렇지만 신랑 신부의 진실함에 기대어 저는 결국 이렇게 주례 자리에 섰습니다.


신랑과 신부, 당신들은 이제부터 한가족입니다. 친족과 가족을 구별하십시오. 공주영 군, 이제부터 당신의 정체성은 부모님의 막내아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권우림 양의 남편입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지키십시오. 권우림 양, 이제부터 당신의 정체성은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딸이 아니라 사랑하는 공주영 군의 아내입니다. 아내로서 남편을 사랑하십시오. 오늘부터 신랑 신부의 부모님과 형제는 아주 특별한 남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사랑은 멀리서 지켜보는 순수하고 숭고한 마음입니다. 예쁘고 겸손하며 화목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진정한 도리입니다.  


신랑 공주영 군, 신부 권우림 양, 우리 이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생각보다 인생은 길다는 사실입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입니다. 인간의 상상력보다 인생의 상상력이 훨씬 더 풍부합니다. 그 상상력을 즐기십시오. 게다가 우리 인생의 전성기는 지금이 아니며 먼 훗날입니다. 그러므로 신랑 공주영 군, 신부 권우림 양 다른 사람들의 섣부른 비교와 간섭을 조심하십시오. 과거를 추억하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십시오. 지나간 일과 현재의 어려움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신랑 공주영 군은 멋진 남자로, 신부 권우림 양은 멋진 여자로, 서로 아름답게 나이를 먹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젊음을 집착하지 말고 예쁘게 늙으십시오. 사람이 예쁘면 좋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좋은 기회도 멋진 성과도 필경 옵니다. 서로 성장하십시오. 두 눈으로 말하십시오. 두 귀로 인생을 사십시오. 자기 자신을 바꾸고 발전시키는 데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사랑은 합리적인 게 아닙니다. 서로 사랑함에 있어 불필요한 합리성을 버리십시오. 아마 그런 합리성은 두 분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간섭일 가능성이 큽니다.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 자식이 생겼을 때의 양육의 문제,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분담은 합리성으로 나누지 마십시오. 낡은 편견과 관습에 눌리지 마십시오. 합리성을 버리면 자존심도 내려놓을 수 있답니다. 서로 잘하는 일을 하십시오. 지금 못하는 일은 장차 잘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서로 칭찬하고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길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단점에 기를 쓰지 말고 서로의 사랑을 지키십시오. 사랑은 연약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죽습니다. 


신랑 공주영 군, 아내를 사랑하고 늘 노력하면 남자는 전속력으로 진화합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멋지게 진화하는 남편을 싫어할 아내는 세상에 없습니다. 


신부 권우림 양, 지금으로부터 반 백 년이 지나서 멋진 구두를 신고 아름다운 머플러를 바람에 날리며 함께 늙은 남편과 손잡고 걷는 백발의 여인이 되십시오.  


두 분의 결혼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면서 주례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에 했던 주례사.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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